지난 몇 년간 일본은 한국과 중국 공동의 비판 대상이었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한·중·일의 고질적인 과거사, 영토 문제가 불거지고 소위 ‘보통국가화’를 추진하는 일본의 행보가 노골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단호함도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쉽게 찾지 못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일의 경색국면이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 ‘충격’으로까지 묘사했던 중·일 두 정상의 화해 제스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기 시작한 속내는 무엇인가.
마침 필자는 지난주 베이징에서 있었던 한·중·일의 안보협력 논의 과정에 참여했다. 중국 외교부가 주관한 3국 전문가들의 비공개회의를 통해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이 일본과 소위 ‘적절한’ 수준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평화·공영을 연일 강조하면서 일본과는 대립을 지속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과의 군사적 대립은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주변국과의 ‘운명공동체론’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상징되는 새로운 실크로드 추진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의 과정에서 최소한 일본의 소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결코 ‘독주’가 아닌 ‘협주’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일본이 불참하는 연주는 최상의 화음을 만들기 어렵다.
셋째, 일본과의 대치 국면이 미·일의 군사적 밀착을 부추기고 이는 결국 중·미를 이간시키려는 일본의 속셈에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나타난 미·일의 새로운 밀월관계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시도가 너무 늦었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 때문인지 최근 중국은 한·미·일의 반발을 야기했던 ‘신안보관’ 즉 아시아지역의 안보는 역내 국가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기존의 한·미, 미·일 동맹 체제도 신안보관과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시진핑과 함께 미소 짓고 오바마와 파안대소하는 아베 총리를 그저 충격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그보다는 이를 계기로 주변국 정책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일 관계의 속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보다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양자관계에서 한국의 비중은 우리 기대만큼 크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의 전략적 판단과 상호관계의 수위 조절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고려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이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들의 관계변화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는 우리가 미숙할 뿐이다.
중·일뿐만 아니라 여타 강대국 간의 관계 변화에도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거의 없다.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현실, 비대칭적인 상호인식의 한계를 자각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특히 늘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를 제약하고 주변국에 간섭의 빌미를 주는 한반도 평화, 안정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남북한의 극한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외적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한반도포커스-문흥호] 베이징에서 바라본 중·일관계
입력 2015-05-04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