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티 맥대니얼(1895∼1952)은 오스카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여배우다. 1939년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하녀 매미로 열연, 이듬해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영화에서 그녀는 천방지축 백인 아가씨 스칼렛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면서도 스칼렛의 한마디에 시선을 땅에 떨구는 식의 개성 넘치는 하녀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맥대니얼의 시상식 참여가 문제가 됐다. 흑인은 시상식의 일꾼일 수는 있어도 손님이 될 수 없었다. 맥대니얼 등 흑인 배우들은 앞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클라크 게이블이 나섰다. 그는 “예술에 인종차별이 개입할 수 없다. 맥대니얼이 시상식에 못 가면 나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논란 끝에 두 사람 모두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고 사이좋게 여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맥대니얼의 연기를 비판하는 흑인들도 있었다. 굴욕적인 연기로 흑인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녀는 오스카상의 영예를 얻은 뒤에도 단역이나 하녀 역할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인이나 하녀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항변했다. 원작 소설도 인종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흑인들의 생존권 투쟁을 진압한 백인들을 옹호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인종차별로 촉발된 잇단 소요 사태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8월 퍼거슨을 시작으로 뉴욕, 클리블랜드에 이어 볼티모어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볼티모어의 경우 약탈과 방화가 극심해 시 전체에 비상사태까지 선포됐다. 연루 경찰들이 무더기로 기소되면서 사태가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1937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퓰리처상을 받아 세상에 알려진 지 3일로 78년이 지났다. 인종차별의 불행이 여전히 미국을 짓누르고 있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
[한마당-김상기] 스칼렛의 하녀
입력 2015-05-04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