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러시아 방문 왜 틀어졌나… 원유 등 기대했던 ‘반대급부’ 못 받은 듯

입력 2015-05-02 03:39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7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은 러시아에 기대했던 ‘반대급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1일 “북한이 얻으려 했던 게 잘 안된 것 같다”며 “원유 지원 등과 같은 경제적 지원에 대한 충분한 약속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가 지난 30일 북한의 ‘내부 문제’로 김 제1비서가 불참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은 양국의 셈법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원유 공급 등 상당한 수준의 경제 지원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상반기 중국의 원유 지원이 원활하지 않자 러시아 연방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원유도입 협상을 벌였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제기했다가 거절당한 무기류 지원을 다시 한번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러시아는 최근 유가 폭락과 국제 제재로 국가 수입이 현저히 줄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 북한을 지원할 만한 여유가 없다.

러시아는 이번 기념식에서 김 제1비서를 ‘흥행카드’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적 고립 상태인 러시아로서는 세계적 관심 인물인 김 제1비서를 불러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의도가 컸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북한이 참가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 없음에도 꾸준히 김 제1비서의 참가를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을 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김 제1비서의 첫 외국 나들이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승전 기념식이 다자외교 무대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핵·미사일 개발과 무자비한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평판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 관행에 익숙지 않은 김 제1비서가 자칫 국제적인 조롱을 받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김정은 3년여 집권기간 동안 한 번도 외국 지도자를 만난 적이 없다. 2013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던 차히야 엘벡도르니 몽골 대통령도 만나지 않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김 제1비서가 세계 유일의 정상회담 경험이 없는 현직 정상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만큼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중국통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뒤 북·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했다. 북한은 중국 대신 러시아에 적극 다가가 중국을 자극했고 최근 중국은 북한이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등 다시 북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우방인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를 먼저 방문하고 러시아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첫 만남을 가진다는 것도 장기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