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방송, 2차대전 패전국의 참상 다룬 다큐 내일 방영… “러시아軍, 최대 10만명의 독일 여성 강간했다”

입력 2015-05-02 02:24

독일 베를린 교외의 트렙토어 공원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를 상대로 싸우다가 숨진 5000명의 러시아군 희생을 기리는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은 1일 “어쩌면 그 동상의 이름을 ‘이름 모를 강간범들의 동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오는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행사를 앞두고 BBC방송이 패전국인 독일의 비참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3일 내보내기로 했다. 다큐멘터리는 1945년 러시아군이 베를린 점령 과정에서 많게는 10만명의 독일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내용을 다뤘다.

러시아는 오늘날까지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베를린에서의 대규모 강간’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대표적인 게 당시 베를린 점령 전쟁에 참여했던 블라디미르 겔판트라는 러시아 대위의 일기장이다. 일기장에는 러시아군이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해가는 과정에서 수차례 집단 강간한 사실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독일 병사의 미망인이 남긴 또 다른 일기장에는 “강간 사건이 많아 차라리 러시아 고위 장교의 애인이 돼 다른 군인들은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일부 러시아 병사들은 “독일의 러시아 침공 때도 강간이 있었다”면서 ‘보복 강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일기에 소개됐다.

러시아국립아카이브에서 발견된 러시아 비밀경찰들의 보고서에도 강간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보고서는 “러시아군의 아이를 가진 독일 여성들 사이에 낙태가 확산되고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독일 여성들도 많다”고 기록돼 있다.

강간 피해자인 잉게보르그 블레르트(90) 할머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워낙 강간이 많아 ‘우리 딸은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일부 엄마에게는 커다란 자랑거리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문제였다. 베를린 내 24개 자치구 중 1곳인 뉴콜린에서 발견된 ‘낙태허가’ 자료가 그 사실을 잘 드러낸다. 당시 낙태는 불법이었지만 뉴콜린 당국은 명백한 러시아군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 한해 허가를 내줬는데 모두 995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다른 23곳의 자치구와 베를린 교외의 강간 사례 등을 감안하면 최대 10만건의 강간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기를 남긴 러시아 장교의 아들인 바탈리 겔판트는 올해 중 아버지의 일기를 러시아에서 출간할 계획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