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피아 척결” 외치며 “취업 알선”

입력 2015-05-02 02:45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이 국책 연구기관 등 26곳에 퇴직한 고위 공무원들을 채용키로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세월호 사고로 불거진 ‘관피아’ 논란으로 재취업 길이 막힌 고위 공무원들에게 새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1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전문경력 인사(고위 공무원) 전문성 활용 지원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연구회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연구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 경제·인문사회 분야 정부 출연기관 26곳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 사업은 퇴직 후 3년 이내의 고위 공무원을 소관 기관에서 활용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선정된 이들은 직원 교육, 연구과제 관련 자문, 연구 보고서 평가 등 업무를 맡게 된다. 1주일에 사흘 정도만 출근하면 연구회로부터 매달 300만원, 해당 기관으로부터 100만원을 받는 등 월 4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1인당 7평(23㎡) 정도의 사무공간과 사무보조 인력도 제공받는다. 연간 최대 50명을 선발할 계획이고, 최장 3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퇴직 공무원의 밥줄을 대주는 데 연간 2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용역 작업을 수행 중이다. 연구회 측은 연구기관들이 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겉으로는 ‘관피아 척결’을 외치면서 뒤로는 취업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라 반발도 만만찮다. 전국공공연구노조 관계자는 “관피아 논란으로 국민 여론이 따가워지자 소관 국책 연구기관에서 노후생활을 마련해주려는 것”이라며 “변형된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퇴직 공무원들의 유관 분야 취업 제한이 3월 말부터 3년으로 늘어나자 연구기관들을 재취업을 위한 ‘정거장’ 역할로 삼으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을 채용해야 하는 기관들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 방만 경영 척결을 외치는 상황에서 인건비 등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등 부담이 만만찮다. 지난 3월 연구회가 소속 기관 26곳에 이 사업과 관련한 수요 조사를 실시했을 당시에도 3∼4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관이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공공연구노조 관계자는 “퇴직 고위 공무원들에게 정말로 쓸 만하고 필요한 연륜과 경험이 있다면 연구과제의 구체적 내용과 성격에 따라 그때그때 활용하면 될 일”이라며 “퇴직 공무원들을 전문경력 인사로 포장해 국책 연구기관에 일방적으로 할당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