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편견 없이 세상과 마주하기

입력 2015-05-02 00:35

코끼리가 등에 개미 한 마리를 태우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뒤를 하루살이 한 마리가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었다. 코끼리가 개미에게 “개미야, 너무 무겁다. 어서 그만 내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미는 “시끄러워! 그따위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밟아 죽일 거야”라고 소리쳤다. 둘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던 하루살이가 말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보겠네.” 재미있는 유머다.

사람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자기 수준에서 이해한다. 남자들 중에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인 듯 말하는 편견가들이 많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이었는가?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회사에서 불편한 일이 있었을 때 어떤 생각으로 상한 마음을 다독이는가? 이처럼 어떤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자 기준을 우리는 ‘가치관’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많은 위기 가운데 서 있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별로 없다. 누군가에게 말을 붙여보고 함께 어울리려고 시도해보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삶의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지만, 이따금 흔들릴 때면 자신을 든든하게 붙들어 줄 누군가가 없음에 외로워하는 남자들이 많다. 결국 남자들을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가치관이다. 하지만 편협하고 그릇된 가치관은 자신에게도 남에게 독이 되는 편견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있을 때였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 옥합을 부었고, 제자들은 마리아의 이 지극한 사랑의 행위를 돈 낭비라며 분노했다. 비싼 값에 되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줄 수 있었는데 무슨 의도로 그 귀한 것을 허비했냐고 마리아를 몰아 붙였다. 귀한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마음도,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도 그들에겐 관심 밖이었다. 물론 그들은 마리아가 향유를 준비하는 데 어떠한 재정적인 기여도 한 바 없다. 그런데도 단지 자기 생각에 옳지 않다는 이유로 여인을 비난했다. 누구라도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 내 기준이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판단한다. 다른 사람도 다 나처럼 생각할 거라 기대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더 외로운지 모르겠다. 주변에 자신과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기에 공감받지 못하고 스스로로 고립되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자신의 편견이 진리인 양 한 사람을 거침없는 언어로 비판하고 매도하는 일이 종종 있다. 정작 자신을 향해 누군가 비난의 말을 해오면 비판하는 대상을 향하여 분노를 표현한다. 뾰족한 창끝으로 세상을 휘저으면 그 창끝이 나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아 할 수 없는 말들을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입력한다. 거친 언어들과 뒤틀린 감정들이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편견의 노예가 되어 거친 비판들을 쏟아내는 사람의 내면은 허탈하고 분노로 채워진다. 그러나 좋지 못한 것들도 대안과 위로를 포함한 생각을 표현할 때 읽는 사람들이 위로받듯이 자신도 위로받게 된다. 편견없이 세상을 마주할 때 다름 아닌 내가 행복해진다.

나이들면서 점점 더 분명해져 가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불완전한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대부분이 편견일 때가 많다. 충분히 생각하고 적합한 자료들을 기초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내 편견을 진리처럼 주장할 때가 많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편견은 마음의 병일 뿐이다. 이 병을 안고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의 등불을 가지고 내가 직면한 현실을 비춰봐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과거의 생각을 붙들고 현재를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질 수 있다.

시편 기자의 표현처럼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시 62:3) 같은 세상에서 어두운 내 생각과 마음을 말씀으로 비춰보며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안에 있는 편견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시켜 준다. 나이들수록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비춰보는 일이 필요하다. 편견없이 사람을 대할 때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나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