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다.” “신호등을 잘못 봤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건 정말 문제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바라보는 전직 고위관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 대일(對日) 원거리외교’를 지향해 왔다. 하지만 집권 3년차를 맞는 지금 그 성과는 의심스럽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여전히 미온적이며,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일본은 한국의 과거사 강경 노선에 대항해 ‘한국은 친중(親中) 국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전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외교 전문가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 정부는 외교안보 전반에서 개념 정립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외교는 한·미, 한·중, 대북정책, 국방정책이 서로 연결고리가 맞아야 한다. 이 연결고리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데 어느 한쪽을 제대로 챙긴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사실상 벽에 부딪혔다. 정부는 중국과의 밀월을 지렛대 삼아 북핵문제 해결의 단초로 삼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 선언을 한 데 이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예상보다 많다는 분석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은 미적지근하다. 60여년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관계를 유지해 온 북·중 관계를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중국의 ‘대국 외교’ 전략은 한·중 관계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대국과 할 얘기와 소국과 할 얘기는 따로 있다’는 중국 특유의 스탠스로, 중국 시각에서 ‘대국’으로 평가되는 미·일에 비하면 한국의 입지는 제한적이다. 이는 일본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및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신실크로드 전략) 참여를 시사하자마자 한·중의 대일 ‘역사 공조’가 흔들린 데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 정계에서는 반대로 ‘한국이 친중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싹튼다. 한·미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노(NO)’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미 군부를 중심으로 한국에 우회적인 압박을 가해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본은 이 틈새를 노리고 ‘한국은 친중 국가’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흔들어 놓으려는 움직임조차 감지된다. “미·중 양국의 ‘러브콜’은 축복(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는 우리 정부의 항변이 무색한 상황이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국면에서 과연 한국이 미·중의 ‘러브콜’을 받는 처지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에 지나치게 적대적 입장을 취했던 탓에 일본이 ‘한국은 중국 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와 관련해 제기된 ‘외교 실패’ 논란도 상당부분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베 총리 연설에 대해 학계도 아닌 외교부가 나서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요구한 건 이해가 안 간다”며 “아베 총리가 한국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은 외교부 스스로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결국 자살골을 넣은 셈”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길 잃은 한국외교] ‘持美親中(미국과 현상유지, 중국과 밀월)’ 부메랑
입력 2015-05-02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