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세기의 대결

입력 2015-05-02 18:30

1974년 10월 30일 중앙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사 외곽 정글 한복판에 사각의 특설 링이 세워진다. 세계 헤비급 복싱 타이틀 매치를 위한 무대였다. 무패에 빛나는 챔피언 조지 포먼(당시 25세)과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32세)가 등장하자 8만여 관중이 열광했다. ‘정글의 혈전(Rumble in the Jungle)’이라고 불렸던 세기의 대결은 그렇게 시작됐다.

‘빅3’ 중 하나였던 조 프레이저를 무너뜨리고 챔피언에 등극한 포먼의 기세는 무서웠다. 예상대로 포먼은 경기 초반 알리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것은 알리의 전략이었다. 일명 ‘로프 어 도프(Rope-a-Dope)’였다. 로프에 기댄 채 유효타를 최소화해 상대의 힘을 빼는 장기전이었던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줄곧 수세에 몰리던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그의 말대로 8라운드 종료 13초를 남기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포먼의 턱에 날렸다. 포먼은 결국 일어나지 못했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훗날 ‘킨샤사의 기적’으로 명명된 이 승리로 알리는 챔피언 벨트를 다시 허리에 차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복싱 사상 최고의 빅매치 이후 또 하나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다. 3일 낮 12시10분(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격돌이 그것이다. WBA, WBC, WBO 웰터급 통합 챔피언 자리를 놓고 펼치는 경기다. 5체급을 석권한 메이웨더와 8체급을 휩쓴 파퀴아오의 ‘빅뱅’은 대전료(약 2700억원), 티켓 가격(암표 1장 약 2억7000만원) 등 복싱계의 모든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가히 ‘세기의 돈잔치’라 불릴 만하다. 여기에 알리와 메이웨더의 장외 신경전도 볼만하다. 메이웨더가 “나는 알리보다 뛰어난 복서”라고 큰소리치자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음에도 트위터에 “잊지 마라! 내가 가장 위대한 복서!”라고 응수했다. 이래저래 세계의 눈이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쏠리고 있다. 흑백 TV 주위에 옹기종기 몰려 앉아 알리-포먼 경기에 환호했던 국내 올드팬들도 일요일 낮 ‘41년 전의 향수’에 젖어들지 않을까 싶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