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증권거래소’는 잊혀진 이름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당시 등장했던 아이디어 중에는 사회적기업에 특화된 자금조달시장, 거래소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한 축을 차지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벤처·모험자본 육성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런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묻혔다.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었지만 현실 장벽은 높다. 기업과 투자자를 매개하는 시장으로서의 자생력,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물음표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질적 도약이 어려운 사회적기업의 현실=사회적 거래소는 사회적기업이 수행하는 공익적 순기능과 열악한 경영현실 사이 괴리를 극복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지난 3월 기준 인증 사회적기업은 1300개에 육박하지만 정부재정 의존도가 높다. 고용노동부의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플러스인 기업 비중은 인증 초기인 2007년에는 73.0%였지만 2011년에는 14.1%로 급락한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정부도 재정 지원을 줄이는 차원에서 모태펀드 조성 등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지만 민간 투자자와의 매칭이 여의치 않은 데다 ‘사회적기업 생태계 조성’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기엔 역부족이다.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사회적 거래소가 대안적인 자금조달 플랫폼으로 주목받아 왔다. 주로 프로젝트 상장형과 지분 상장형 등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프로젝트 상장형은 브라질과 남아공 등에서 운영하는 형태로, 투자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의 상장 목록별로 투자자가 기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 상장 후 1년 내에 목표자금을 출자받지 못할 경우 거래소 평가를 거쳐 상장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프로젝트 상장형은 전통적인 거래소보다 상장이 수월하지만 대규모 자금을 끌어오기 어렵고 투자수익이 낮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지분 상장형 거래소를 운영하는 영국에서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중소기업의 지분이 상장·관리된다. 다만 투자자들이 기업의 지분을 직접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개인을 거쳐야만 투자하려는 기업의 지분 가격을 알아볼 수 있다. 상장 기업의 이익을 배당 형태로 투자자와 공유하거나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도록 설계한다는 점에서 기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공론화와 장기적 접근 있어야=사회적기업이 정책금융 지원과 일부 대기업들의 투자에 의존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자금조달 수단으로서의 거래소 기능은 효과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일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선순환되게 하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소액 기부 형태의 자금 지원보다 ‘큰 돈’이 공급되는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사회적 거래소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거래소만 만들어지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보는 잘못된 환상이 있다”며 “상장 요건을 낮춘다 해도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 거의 없는 데다 투자자 기반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섣부른 기대보다는 단계적으로 자금조달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단계는 프로젝트형 상장 방식으로 기부형 투자자의 자금을 공급하고, 시장 여건이 성숙하면 2단계로 지분 발행을 통해 유통형 거래소 설립을 추진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활성화 논의를 뒷받침할 사회적경제기본법은 4월 국회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업무 효율성 차원에서 기획재정부가 추진 조직을 총괄하고, 사회적경제 발전기금 등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정부부처 간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아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사회적기업 현실을 고려할 때 사회적 거래소가 자금 공급에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회 논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사회적 거래소’ 설립 논의 어디까지…] 사회적기업 자립 ‘돈줄’을 찾아라
입력 2015-05-02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