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폭동 사태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볼티모어 인근 대도시인 뉴욕뿐 아니라 보스턴과 시카고 등에서도 동조시위가 잇따랐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는 경찰이 비무장 10대 청소년을 오인 사살한 사실이 드러나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폭동 사흘째를 맞은 29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는 경찰이 5월 1일 검찰에 제출하기로 한 ‘프레디 그레이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다시 시위가 불붙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축을 이뤘고 흑인들뿐 아니라 백인들도 동참했다.
이날 학교와 회사가 정상화되면서 볼티모어는 평온을 찾는가 싶었으나 오후 들어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재집결했다. 시위대는 경찰 조사결과를 공개해 사건 전모를 밝히라고 요구하며 행진을 재개했다. 이에 동조하는 항의시위는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동부 전역으로 확산됐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항의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정의 없이 평화 없다” “손들었다 쏘지 마” 등 인종차별 철폐 구호를 외쳤고 경찰은 60여명을 체포했다. 수도 워싱턴DC에서는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거리행진과 백악관 앞 집회가 열렸다. 보스턴과 시카고 경찰청 앞에도 각각 수백명이 운집해 경찰과 대치했다. “나와 내 가족은 볼티모어, 퍼거슨과 함께한다” “우리가 볼티모어다” 등 볼티모어 시위를 지지하고 경찰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구호가 쏟아졌다. 지난해 인종차별 철폐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도 동조시위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 3명이 총상을 입었으며, 시위대 일부가 체포됐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경찰이 비무장 10대 청소년을 오인 총격해 숨지게 한 사실이 드러나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볼티모어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함구하는 경찰의 폐쇄적 행태에 비판이 쇄도하면서 동부의 불길이 이날 시위가 발생한 덴버와 시애틀 등 중서부로 옮겨 붙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A카운티 검찰청은 지난 23일 롱비치시 경찰국 소속 경찰관이 헥토르 모레흔(19)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의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모레흔이 경찰관에게 총을 겨누는 듯한 행동을 해 발포했다”는 경찰 주장과 달리 사건 현장에서 총은 발견되지 않았고 모레흔 측 변호인은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대 현안으로 부상한 이번 사태에 대해 미 정치권은 혹여 차기 대선전의 ‘지뢰밭’이 될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뉴욕 컬럼비아대 강연에서 “우리 사법시스템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미국의 미래 비전을 갉아먹고 있다”며 사법제도 정비를 촉구했다. 공화당 인사들은 인종 문제보다는 가족 붕괴와 법질서 준수에 초점을 맞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경찰살인 끝내자”… 美 전역 번지는 차별철폐 시위
입력 2015-05-01 04:10 수정 2015-05-01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