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교회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을 고려해 예배와 교회 행사를 준비하다보니 가정과 관련한 주제로 강의하는 강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한 달이다. 성경은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는 말씀은 결혼과 가정의 근원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란 단어가 자주 같이 나온다. 두 대상은 약자를 대표한다. 동시에 깨진 가정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가정을 지키신다.
그런데 예수님과 바울의 독신사역은 가정 중심적 사고를 흩트리며, 어떤 이들은 신앙과 가정에서 신앙이 우위에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의 구절에서 ‘주 안에서’를 강조하는 것도 우위를 가리는 해석 관점이다. 가장 관점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4∼38)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2∼35)
이 자리에서 해석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성경을 신앙과 가정에서 우위를 가리는 의미로 해석해온 가르침이 우리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만 생각해볼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가정보다 우선시되었다. 말이 우선이지 가정은 뒷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그랬고 성도들에게 그러한 삶을 따르라고 가르쳤다. 가정은 사회와 연속선에 있다. 결국 신앙과 가정의 우위를 가리는 관점은 신앙과 사회적 삶이 단절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 충만하지만 가정과 사회, 즉 세상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였다. 성경에서부터 유출된 가정과 세상 삶의 원칙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보다 관습적인 기반에서 성경을 해석하면서 가정에 반하는 관점을 합리화하는 일이 많이 있다. 남성 중심적인 그리고 가부장적인 관습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아직도 많은 교회가 주일에 하루 종일 교회 활동을 위해 교회에 남아 봉사하는 성도를 신앙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신앙의 자발성이 키워지지 않고 교회 안에서만 신앙이 나타나는 이분법적인 삶이 커질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아직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연령의 아이들을 엄마에게서 떨어뜨리고 엄마는 대예배실에서 예배를 충실히 드릴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 교회의 건물 구조상의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을 신앙과 가정의 우위 관점에서 정당한 원리로 여긴다면 건강한 가정의 보호 근간을 흔드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 위험성은 다음 칼럼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가정의 달(1)
입력 2015-05-02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