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이완구·홍준표 ‘기소돼도 무죄’ 자신감 배경은?

입력 2015-05-01 02:28
4·29 재·보궐 선거가 끝나면서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됐다. 검찰은 29일부터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의 일정담당 실무자들을 불러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의 첫 표적인 두 정치인은 '무죄'를 받을 것이란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와 녹취록을 ‘망자의 앙심’이라고 표현했다. 메모와 녹취록이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강하게 깔려 있다. 의혹 대상자들의 이런 대응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는 법리적으로 철저하게 계산한 발언을 본다.

먼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녹취록은 법률상 ‘전문증거(傳聞證據)’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법정에 제출되는 모든 증거는 그 사실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법정에 나와 “내가 쓴(또는 말한) 것이 맞다”고 증언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 증거를 전문증거라고 한다. 증거에 대해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반대 입장에서 질문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사팀이 노리는 것은 ‘전문법칙이 증거로 인정되는 예외적 상황’이다. 성 전 회장처럼 진술자가 사망해 법정에 설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들어간다. 형사소송법은 원래 진술자가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한 진술이나 작성 문건은 전문법칙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수사팀이 성 전 회장의 메모·녹취록이 ‘특신상태’에서 작성됐다는 점을 입증하기 까다롭다는 데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특신상태는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내용의 신용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수사팀이 성 전 회장이 메모를 작성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던 시점의 구체적 행적에 수사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성 전 회장이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거나 외부 개입이 있었다면 메모·녹취록을 증거로 쓸 수 없다.

홍 지사가 “녹취록을 들어보니 메모 내용은 앙심이었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구명로비를 벌이던 성 전 회장이 심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제기한 폭로라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법조계 관계자는 30일 “수사팀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수를 만난 느낌일 것”이라며 “녹취록에 등장하는 ‘사정대상 1호는 이완구’ 등의 감정적 표현들이 수사팀 입장에서 모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메모·녹취록 내용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뿐만 아니라 녹취록 전체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메모와 녹취록에 등장하는 나머지 6명의 의혹을 규명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는 셈이다.

홍 지사는 이날 “성 전 회장을 만난 시기가 2011년이 아니라 2010년”이라며 당초 입장을 번복했다. 메모·녹취록의 신빙성을 흔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