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관에는 인류 상생의 가치가 없었다. 아베는 29일(현지시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지만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해 주변국들에 대해 사과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전후 70년을 맞은 이번 기회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으로서 과거사를 반성하고 미래를 얘기했다면 리더 국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새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 스스로의 행동이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고통을 안겨준 사실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만 언급했다. 마치 남의 집안일 얘기하듯 지나갔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에 참혹한 재앙을 가져다준 전범 국가의 총리로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당사국의 총리로서 아베는 그에 대해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계 제1, 제2의 민주주의 대국을 연결하는 동맹”이라고 일본을 전 세계 민주국가의 리더로 자칭했다. 과거 반성 없이 현재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약삭빠르고 경박한 역사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상생이나 공영이라는 가치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런 비난은 비단 우리만의 시각이 아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당)과 엘리엇 엥겔 외교위 간사(민주당)도 각각 성명을 통해 “연설에 대해 깊이 실망했다. 성노예로서 수모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2007년에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도 “위안부 범죄를 사과하지 않은 것은 충격적이고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도 “연설에 대한 해외 반응이 냉혹하다”고 비판적 논조를 유지했다.
아베는 미국과는 공동 핵심 이익을 추구하고, 호주·인도와는 더욱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은 의도적으로 묶어두거나 무시하려는 외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사 프레임에만 매달려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박근혜정부 2년여의 동북아 외교, 나아가 대미 외교는 실패했다. 올 여름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 전략과 팀을 재정비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심기일전해야 하겠다.
[사설] 아베의 美 의회연설에 상생의 가치는 없었다
입력 2015-05-01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