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막말 이메일’이 문제가 됐다. 박 이사장의 사퇴를 보면서 그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격하게 진행되던 중앙대의 대학 개편 시도가 중단될 것인지, 그리고 대학의 기업화라는 지난 10여년의 흐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질문을 시작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경영의 언어는 종종 향기가 넘쳐나던 말을 오염시켜 못 쓰게 만들어 버린다. ‘성장’이란 말이 붙어버림으로써 ‘녹색’이란 단어가 지루해져 버렸고, ‘경제’가 합쳐져 ‘창조’라는 말도 시들어 버렸다. 요즘엔 ‘대학’이 그 꼴이다. ‘기업’과 밀착하면서 가능성과 낭만성으로 반짝거리던 고유의 광휘를 잃어버렸다.
대학은 왜 필요한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좋은 대학이란 어떤 대학인가, 이런 것들은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붙들고 있어야 할 질문들이었다. 2000년대 들어 경영마인드와 기업형 인재,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 등 다소 수상쩍은 얘기들이 대학에 퍼져나갈 때 의심을 했어야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질문하기를 포기했고, 너무 쉽게 대학을 기업에 내주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학은 취업 사관학교, 기업의 안마당이 돼 버리고 말았다. 경영학이 대학의 중심 학문이 되는 사이 인문학은 폐과 위기에 몰렸고, 시민을 길러낸다는 대학 교육의 목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 양성으로 슬그머니 교체됐다. 학생들은 취업에, 대학교수는 재임용 심사에 목을 매단 채 옴짝달싹 못 하게 되면서 보수화됐고, 계층이동의 사다리였던 대학은 계층세습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위대한 문인이나 사상가에게 헌정됐던 대학 건물명이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명으로 도배된 것이야말로 지금 대학의 주인이 누구인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대학의 힘으로 사회를 갱신해 왔던 모멘텀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뼈아픈 손실이다. 대학의 목소리는 이 사회를 성찰하고 개혁하게 하는 주된 자극이었다. 학생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제공해 왔고, 대학교수들은 현실의 허점을 보게 하고 대안을 상상하게 하는 시각과 전망을 공급해 왔다. 대학은 그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식기관이었으며, 대학교수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경영, 효율, 성과, 경쟁 등이 대학을 잠식하면서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생각해보면 기업과 대학이라는 조합은 당초 부자연스런 것이었다. 기업에선 복종과 해답이 중요하지만, 대학에선 비판과 질문이 핵심이다. 기업은 ‘딴짓’이나 ‘잉여’를 악으로 취급하지만 대학은 그것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드문 곳이다. 대학은 기업과는 다르다. 교육은 한 시대가 물려받고 키운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그 가치가 경쟁이나 성공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물론 대학의 기업화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반성과 저항이 전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학생들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대학을 기업화하는 방식이 그 유일한 해법인 건 아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삶의 의미도 찾아야 한다. 인생은 취업이나 성공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대학 주식회사’라는 책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니퍼 워시번의 말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대학은 공적 기관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대학은 쉽게 기업에 굴복했다
입력 2015-05-01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