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3) 내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서아프리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입력 2015-05-02 00:24
홍수 피해를 입은 니제르 수재민들이 임시 처소에 설치해준 모기장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홍수가 났다. 많은 사람이 집을 잃은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자연재해 앞에 차마 손 쓸 수 없었던 무력한 희생자들이 적잖이 생겼다. 긴급한 뉴스가 보도된 곳은 가끔씩 급격한 기상 변화가 생기는 평범한 지역이 아니었다. 전 국토의 80% 이상이 사하라 사막에 속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더운 나라 니제르였다. 2012년 9월, 뉴스에서는 니제르에 90여년 만에 닥친 대홍수라고 연일 보도됐다.

수 세대에 걸친 경험에 비춰 대홍수가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가난도 더위도 모두 극심한 까닭에 자연재해에 대비할 형편도 못 됐다. 보수가 되지 않아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강둑의 일부가 무너져내린 것도 타격이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뜩이나 말라리아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이 땅에 콜레라까지 창궐했다.

수도 니아메마저 더딘 수해복구 작업에 피해자는 계속 늘었고, 많은 수재민은 학교로 임시 거처를 옮겼다. 그마저도 개학하면 나가야 할 형편이지만 난국을 타개할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도 만족할 만한 신속한 조치나 후속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니제르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침수된 선교센터를 복구하는 일과 더불어 지역민들의 아픔도 함께 보듬어야 했다. 같이 예배드리고, 심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구호단체들은 피해 지역에 긴급히 구호물자들을 제공했다. 옆 나라에서 이 사태를 전해들은 나는 바로 짐을 꾸려 니제르로 넘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는 말씀은 늘 내게 도전이었다. 광야에서 나를 살려주고, 사랑해준 인생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여행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방법으로 모아둔 경비를 꺼냈다. 그리고 학교에 거하는 수재민들에게 모기장을 전달했다.

손을 잡고 웃어주는 이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다. 사실 해준 것도 없다. 혹 내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얽매여 하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모르는 선교지에 가서 내 고집대로 일을 처리한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을 때 그들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이것을 통해 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또 서툴게 배우게 됐고, 다음번엔 더 성숙하게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는 격려가 되었다.

한국에만 있다 보면 가보기는커녕 이름 한번 언급되기 쉽지 않은 무관심한 땅들이 참 많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의 힘과 지식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재해에 의해, 혹은 야만적인 탐욕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고 희생되어 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니제르도 그런 땅이다.

내가 니제르에 관심 한번 가져본 게 언제던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 아래 이 땅을 밟았기에 이제 마음이 동할 때 기도 한 번 할 수 있는 애정이 생겼다. 모든 나라와 선교지가 그렇다. 같이 밥 한 그릇 나눈 정으로, 어려움을 나눈 위로로, 희망을 공유하는 기쁨으로 현지 상황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곳을 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니제르에 짧게 머물다 돌아왔다. 그들의 아픔에 더 동참하고 싶어도 오히려 준비 없이 가면 민폐가 될 수 있다. 대홍수라는 시련 속에서도 멀리서 온 이방인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준 이들 때문에 마음이 더 저려왔다. 비행기로 전 세계 어디든 하루 만에 도착 가능한 일일 생활권에서 사는 우리들은 이제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내 이웃의 범주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이웃이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