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어떤 마주침, 어떤 엇갈림

입력 2015-05-01 18:56

엿새에 걸친 히말라야 트레킹이 막바지에 이른 날이었다. 나는 긴 산행으로 지쳐 있었고, 해는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서 초조하기도 했다. 어느 마을을 지나치다가 돌로 쌓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의 남녀를 보았다. 주위에는 염소와 닭,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부부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어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인 두 사람의 입에서 뜻밖에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의 탈진 상태였던 나는 그들이 나누는 비밀스러운 다정함에서 설명할 수 없는 위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평생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그들과 내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서 이 순간 마주치게 된 것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귀국하는 날 정오 무렵에 나는 카트만두의 숙소 4층 방에 혼자 있었다. 밤 열한 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고, 그래서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짐을 싼 뒤 공항에 가기 전까지 가방을 호텔 리셉션에 맡겨야 할지, 네팔에 며칠 더 남아 있기로 한 일행에게 맡겨야 할지 망설이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휴대폰에 손을 뻗어 친구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내가 있는 공간을 함부로, 마구, 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보다는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잠시 후 지진이 멈췄을 때 나는 지갑과 여권만 챙겨든 채 숙소를 빠져나왔다.

만 하루 동안 공항에서 노숙을 하면서 기다리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가 이륙하자 승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나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은 불편했다. 산길을 걷다가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아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곳에 남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기도 비슷한 바람뿐이었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