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박강월] 푯대지기 무명용사처럼

입력 2015-05-02 00:44
작은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소년에게 꼭대기에 화살표가 달린 십자가를 맡기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푯대를 지켜 주겠니? 사람들이 이걸 보고 내가 간 길을 알 수 있단다”라고 부탁하셨다.

십자가 푯대는 소년 키를 훌쩍 넘는 엄청난 크기였지만, 소년은 두 팔로 꼭 끌어안고 푯대를 지켰다. 소년 앞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푯대를 보고 예수님이 가신 방향을 따라갔다. 이윽고 낙엽 지는 가을과 눈보라 치는 겨울이 오자 푯대는 심하게 흔들렸다. 마침내 거친 눈보라에 푯대는 넘어졌고 소년도 차가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울고 있는 소년의 뇌리에 푯대를 지켜 달라고 부탁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고, 다시 소년은 죽을힘을 다해 푯대를 일으켰다. 결국 모든 힘을 소진해 무릎을 꿇은 채로 십자가를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소년을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서러움과 반가움에 눈물 범벅된 얼굴을 들고 보니 두 팔을 활짝 벌리신 예수님이 소년 앞에 서 계셨다. 자신처럼 울고 계신 예수님을 향해 소년은 마구 달려가 품에 안겼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젠 나와 영원히 함께 하자꾸나.”

이 내용은 주부편지에 카툰을 연재하는 정기로님의 플래시 영상 ‘소명’ 줄거리다. 사역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큰 위로를 주며 나의 소명을 새롭게 다짐하게 해준다. 아직 소년처럼 어리고 연약하여 전쟁에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소년병에 불과한 믿음이지만, 대장께서 푯대를 지키고 있으라 하셨으니 그 명령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 가는 무명용사일지라도 끝까지 대장의 명령을 지켜 임무를 완수하는 소년병이고 싶다.

박강월(수필가, 주부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