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9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도 끝내 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 및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2차 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 국가들 대신 전쟁 상대국이었던 미국에만 사과했다. 40분가량 이어진 이날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의 유대와 전후 일본의 평화 기조만을 애써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먼저 58년 전인 1957년 자신의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했던 연설문 일부를 소개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학생 시절 캘리포니아주에 첫발을 디뎠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미국과의 첫 인연을 소개했다.
이어 아베 총리는 연단에 서기 전 제2차 세계대전 기념 공원을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유의 벽(Freedom Wall)’에 박혀있는 금색별을 언급하며 “개개의 별이 100명의 (2차 대전 도중) 숨진 미국 병사들이란 것을 듣고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금색 별들이야말로 자유를 지키기 위한 희생의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굳게 믿는다”며 “가슴속에 깊은 회개(with deep repentance in my heart)를 하며 그곳에 섰다”고 강조했다.
480줄 가까이 되는 연설문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부분은 미국에 대한 사과 부분이 34줄이었던 반면 고통을 겪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언급은 8줄에 불과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회개’ ‘끝없는 위로(eternal condolences)’란 표현을 사용한 반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deep remorse)’이란 표현만 썼다. ‘식민지배’, ‘침략’이란 단어 대신 ‘우리의 행동(our actions)’으로 미화했다.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해 현지에서도 “아시아 국민을 위한 연설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국민을 위한 연설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 28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에 대한 사과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깊은 아픔을 느낀다”며 “이 점에서 역대 총리들과 다르지 않게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은 고노 담화와 관련한 과거 발언에 비해 좀 더 명료한 입장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지만 여전히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공식 사과나 사죄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면피성’ 발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29일 의회 연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아베 총리의 행보는 악화된 국제 여론을 의식해 해외에는 마치 진전된 입장인 것처럼 비춰지게 하면서도 동시에 자국 내 보수 여론 등을 의식해 과거사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아베, 美 의회 연설] 아시아 국가 외면하고 美에만 “깊은 회개” 사과
입력 2015-04-30 0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