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신두팔초크의 저밀리 람 비커(27·여)씨는 25일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47세였던 아버지는 집에서 기둥을 붙들고 죽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어서 나가자”고 할 때 그는 “이번에도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혼자 남았다. 비커씨는 “그 집은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라 애정이 강하셨던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지진이 발생한 낮 12시쯤 비커씨는 할머니를 모시고 시내 병원에 가 있었다. 약을 타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집에 깔린 사실을 전해 들었다. 오후 8시쯤이었다. 할머니 약은 어디선가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시신은 다음날에야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집은 비커씨 부부가 사는 곳에서 산 위쪽으로 두 시간을 더 걸어가야 한다. 비커씨 가족은 해가 뜨자마자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쳤다. 이웃들도 각자 자신의 혈육을 파냈다. 아버지를 꺼내기까지는 서너 시간이 걸렸다.
신두팔초크의 시신들은 모두 화장됐다. 마을 아래로 흐르는 강이 1000여명의 재를 받았다. 그 강은 이날 내린 비로 불어나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신두팔초크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비커씨는 “살면서 이런 지진은 없었다. 원래 땅은 조금씩 흔들렸지만 그러다 곧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그에게 안긴 두 살배기 딸이 엄마 옷을 자꾸 잡아당겼다. 옆에선 넘어져서 이마에 흉터가 남은 8살짜리 딸이 기자를 올려다봤다.
강가 산비탈의 비커씨 집도 지진으로 주저앉았다. 3년 전쯤 90만 루피(약 935만원)짜리 땅에 40만 루피(약 416만원)를 들여 지은 집이다. 방 2개와 부엌이 있는 이 집의 창문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 창문은 부서져 돌무더기 속에 묻혀 있었다. 돌덩어리 몇 개를 들어내니 비에 젖은 공책이 나왔다. 큰딸이 연필로 또박또박 쓴 영어 연습장이었다.
남편 람바둘 비커(35)씨는 “지금은 돈도, 계획도 없다. 이대로 사나흘을 먹고 나면 양식도 바닥난다”며 막막해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중국 국경에서 옷을 떼어 와 마을 상점에 팔아왔다. 그 길은 지진으로 막혔다. 여권은 무너진 집 안에 있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무너진 집터를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땅인데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했다. 그 땅이 이들을 다시 배반하지 않기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신두팔초크=강창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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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30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