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아베 “고노담화 조건없이 계승, 수정 않겠다”면서…] 사과는 없었다, 기대도 안했다

입력 2015-04-30 02:44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을 앞둔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 수요집회를 열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미·일동맹 규탄 팻말도 눈에 띈다. 이병주 기자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현지시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 고노(河野) 담화를 계승할 것이며 이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제 동원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아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위안부에 대한 사과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깊은 아픔을 느낀다”며 “이 점에서 역대 총리들과 다르지 않게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은 고노 담화와 관련한 과거 발언에 비해 좀 더 명료한 입장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지만 여전히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공식 사과나 사죄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면피성’ 발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여러 차례 언급한 ‘깊은 고통을 느낀다(deeply pained)’는 표현은 2012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주당 내각이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용한 ‘사과(apology)와 반성(remorse)’보다도 후퇴했다는 평가다. 결국 이런 아베 총리의 행보는 악화된 국제 여론을 의식, 해외에는 마치 진전된 입장인 것처럼 비치게 하면서 동시에 자국 내 보수 여론 등을 의식해 과거사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현실적 구제의 관점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며 1995년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을 은근히 내세웠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은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이라기보다 민간 모금 성격이 강한 이 기금 수령을 거부했었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업적을 내세우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그는 전날 워싱턴DC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2차대전 때 리투아니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스기하라 지우네가 유대인 난민 수천명을 구제한 사실을 언급하며 “(스기하라처럼) 유대인 난민을 도운 일본인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미·일 안보조약 개정 시도가 옳았다며 2차대전 A급 전범인 외조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