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학 3주 만에 “학과 폐지”…학생들 날벼락

입력 2015-04-30 02:06 수정 2015-04-30 13:59

“올해는 신입생을 뽑지 않게 됐습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생명의료정보학과 신입생 A씨(19·여)는 지난달 17일 보건과학대학장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이종헌 보건과학대학장은 “여러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생명의료정보학과를 보건행정학과와 통폐합하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말은 통폐합이지만 실상은 ‘폐과’ 조치를 일방 통보한 거였다. 학생들은 ‘멘붕’에 빠졌다. 갑자기 모두 모이라기에 의아했는데 이런 공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입학식을 하고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A씨가 입학한 생명의료정보학과는 2014학년도 단국대 본·분교 통합 때 생겼다. 천안캠퍼스의 ‘BT(생명공학기술) 분야’ 특성화가 이뤄지면서다. 신설된 지 2년도 안돼 공중분해 처지에 놓였다.

폐과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같은 달 20일까지 다른 학과로 전과하라는 통보가 왔다. 학생들은 “들어오자마자 폐과 소식을 들은 것도 당황스러운데, 인생이 걸린 일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정하느냐” “생명의료정보학과는 이과 계열이고 보건행정학과는 문과 계열인데 통폐합이 말이 되느냐”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화과정 등에서 커리큘럼 자체가 달라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날벼락 같은 폐과 조치 뒤에는 대학구조개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감소하자 ‘강제 정원감축’의 토대가 되는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체적으로 학과구조개편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대학의 생존을 위한 실험이 학생에 대한 배려 없이 ‘대학만 살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런 사태는 신입생을 받을 때부터 예정돼 있었다. 학교 측은 이미 지난해 말에 생명의료정보학과 폐지를 결정했다. 결정 과정에서 학생 의견은 수렴하지 않았다. 학과장에게는 올해 초 통보됐다. 학과를 없애기로 결정해놓고도 이 학과 정시모집을 강행해 신입생을 뽑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원서를 접수받아 올해 2월 A씨를 포함해 22명을 선발했다. 모두 폐과나 통폐합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채 지원한 터였다.

오세종 생명의료정보학과장은 “정시모집 계획은 1년 전에 결정이 되는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9월에 있었던 2015학년도 수시모집을 통해서도 8명을 이 학과 신입생으로 뽑았다. 당시 경쟁률은 10.3대 1이었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현재 이 학과 학생 54명 중 46명은 다른 과로 뿔뿔이 흩어졌다. 1학년 7명과 2학년 3명이 보건행정학과로 옮겼다. 신소재공학과나 심리학과 등 전혀 다른 분야로 전과한 학생도 있다. 남은 8명 가운데 1명은 자퇴 후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나머지 7명은 입대휴학, 전과, 자퇴 등을 놓고 고민 중이다. 학생들은 옮겨간 학과에서 떠돌이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마치 어미 잃은 새 같다”고 자조했다.

학교 측은 폐과 조치 이유로 비슷한 커리큘럼이 다른 과(보건행정학과)에 이미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따른 정원 감축 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해석한다. 오 학과장은 “학교 입장에서 현재 학과 상황과 교육부의 이런 큰 방침(대학 구조조정) 등을 비춰봤을 때 폐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비단 우리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전국적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단국대 대학본부 관계자는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가시화되면서 비슷한 전공 학과끼리 통폐합이 이뤄지게 됐다”며 “대학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학과 통폐합은 생명의료정보학과뿐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개별 대학의 자체적 판단이지 대학구조개혁 평가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학과의 통폐합으로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대학이 더 좋은 점수를 받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며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 등을 감안해 자체적으로 판단해 조정한 것일 뿐이고 대학구조개혁 평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