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씨네샹떼] 영화史 120년 걸작 25편 조명한 영화인문학 만찬

입력 2015-05-01 02:49
철학자 강신주(왼쪽)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서울 강남구 CGV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된 ‘씨네샹떼’라는 이름의 영화인문학 강좌에서 대담하는 모습. 지난해 7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6개월간 이어진 둘의 영화토크쇼는 한 권의 두툼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민음사 제공
영화는 보는 것이지만 종종 읽기의 대상이 되어왔다. 영화에서 뭘 읽는다는 것일까? 아마도 영화가 반영하고 재연하고 표현하고 제시하는 시대와 사람들이 읽기의 대상일 것이다. 역사와 인간, 그것은 인문학의 주제다. ‘영화인문학’은 이로부터 성립한다.

‘씨네샹떼’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영화읽기 열풍, 영화인문학 바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그때 유능한 젊은이들은 영화판으로 몰려갔고, 영화잡지들이 전성기를 누렸으며, 영화감독과 평론가들은 지식계의 스타 대접을 받았다. ‘1000만 영화’가 1년에도 몇 편씩 나온다지만 지금 시대 영화를 둘러싼 풍경이 당시와 같은 열기를 띠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늘날 영화에 대한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를 응시하고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동시대를 사유하는 말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씨네샹떼’는 영화를 진지한 공부의 수단으로, 성찰과 사유의 매체로, 읽기와 쓰기의 대상으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시도다. “이 책의 열망은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든 영화의 성찰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와 함께 영화의 언어가 타오르는 것이다.” 야심 차게 시작된 이 기획은 영리한 편집을 거쳐 대중적이면서도 수준이 높은, 영화인문학의 한 전범이 될만한 책이 되었다.

영화인문학 강사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강신주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영화평론가 이상용을 불러내 세계영화사의 걸작 25편을 통해 영화사 120년을 조명한다는 구상은 탁월하다. 둘의 대담으로 책의 중심을 삼되, 그 앞에 영화와 감독에 대한 정보를 배치하고, 대담 뒤에는 둘이 각자 쓴 주관적인 에세이를 붙인 편집도 칭찬할만하다.

이상용은 해박한 영화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보와 이야기 위주로, 강신주는 인문학 파워 라이터의 내공을 유감없이 뽐내며 해석과 의미 위주로 얘기를 펼친다. 이상용이 탄탄하게 사실을 받쳐준다면, 강신주는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까지 해석을 밀고 나간다. 둘의 거리는 대담을 통해 서로 조정되면서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영화 이야기가 품을 수 있는 범위를 확보한다.

책은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에서 시작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4년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까지 다룬다. ‘전함 포테킨’ ‘싸이코’ ‘노스탤지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 많은 이들이 거듭해서 읽어냈던 고전적 영화들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셜록 주니어’ ‘하녀’ ‘로제타’처럼 다소 생소한 작품들도 보인다.

첫 장 ‘열차의 도착’을 보자. 둘은 영화가 태어나는 순간을 들여다보면서 영화의 장르적 속성과 매체로서의 특징, 영화가 가져온 변화 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상용은 “영화는 간편했다. 더 이상 활자를 보며 상상하거나 입으로 떠들 필요가 없었다. 보여 주기만 하면 됐다. 그것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람들은 영화의 도착과 함께 많은 것들을 망각하며 영화에 맡겨 두기 시작했다”고 영화 탄생의 의미를 정리한다.

그는 또 “영화의 중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제스처에 있기에 영화는 본질적으로 윤리와 정치 분야에 속한다”는 조르주 아감벤의 말을 인용하면서 “어느새 그 몸짓을 흉내 내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몸짓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강신주도 “(영화를) 이미 봐 버린 이상, 나의 몸짓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아진다”거나 “이제 우리는 시네마가 만든 제스처를 보고 거기에 영향을 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강신주는 특히 영화가 움직임(운동)을 다루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집단으로 관람하는 문화에 주목한다. “영화는 집단적인 지각 경험을 만들죠. 그러니까 영화를 통해 동시대를 느끼고 살아가는 공통된 방식을 제공받는다는 겁니다.” 영화의 등장이 그림과 소설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살핀다.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이토록 풍성한 요리를 차려내기란 쉽지 않다. 강신주는 영화가 강요하는 ‘2시간의 인내’에 대한 대가는 말초적 재미와 성찰의 힘,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책이 말초적 재미에 치우친 한국의 영화 문화를 성찰의 힘 쪽으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게 된다.

‘씨네샹떼(Cine Chante)’는 프랑스어로 ‘영화예찬’이란 뜻이다. 책은 지난해 7월 시작해 올해 1월까지 6개월간 서울 강남구 CGV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된 강신주 이상용의 영화토크쇼 ‘씨네샹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