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말로, 그가 다녀간 지평엔 늘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입력 2015-05-01 02:35
프랑스에는 ‘말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앙드레 말로(1901∼1976·사진)는 1959년 드골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이 돼 10년 간 혁신적이고 강력한 문화행정을 펼쳤다. 말로를 뛰어넘는 문화행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집권층에 따라다녔다는 얘기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대중은 극장과 미술관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 말로의 문화정책은 이런 철학에 요약돼 있다. 그런데 책을 쓴 전기작가 장 라쿠튀르(93)는 평전이 갖기 쉬운 ‘신격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공과에 엄정하다. 저자는 문화재 보존 분야 창설, 프랑스가 소유한 미술품과 기념물의 전체 목록화 등 말로 업적을 열거하면서도 그런 정책이 이미 주목 받은 작품, 즉 ‘사진 찍을 수 있는’ 작품에 관심을 기울인 것뿐이라고 매몰차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말로의 생전인 1973년 이 책을 쓴 저자가 말로의 드라마틱한 삶을 서술하는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깔려 있다. “그가 다녀온 지평에서는 항상 바람이 다르게 분다”라는 찬사를 바쳤으니 말이다.

말로는 모험가로, 반파시스트로, 작가로, 정치인으로, 행정가로 다양한 삶을 살았으며 늘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고자 했다.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1923년 인도차이나 유적을 찾던 중 도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프랑스 지식인의 구명운동 덕분에 풀려난다. 감옥에서 느낀 식민당국에 대한 혐오감으로 반식민주의자가 된다. 이듬해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에는 중국에 들러 사회주의 혁명을 목격한다. 이 때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조건’을 써서 콩쿠르 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명성을 얻는다. 1930년대 히틀러 나치즘이 등장하자 ‘모멸의 시대’를 통해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에 가담하여 싸웠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다. 전선에서 샤를 드골 장군을 만난 뒤로는 드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드골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내게 된다. 드골과 말로는 불가분의 관계다. 드골은 “나는 오른쪽에 앙드레 말로를 앉혔고,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했고, 말로는 드골 실각 이후 미련 없이 사인(私人)으로 돌아갔다. 책에는 아버지의 자살, 두 아들의 교통사고 사망 등 개인사의 비극도 녹아 있다.

평전 발간은 1982년 홍성사, 1995년 현대문학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책이 가진 감동적인 힘과 울림을 제대로 옮겨놓지 못했다는 느낌이 많았다”며 새 번역에 의미를 부여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