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권리”vs “가족제 붕괴” 법 심판대 선 동성결혼… 美 연방대법원 첫 심리

입력 2015-04-30 02:49

미국에서 동성애 결혼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미 연방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첫 공개 심리를 열었지만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팽팽한 이견이 드러났다. 법정 안팎에선 찬반 공방과 시위가 펼쳐졌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엇갈린 입장을 내놓았다. 미 연방대법원은 6월 말까지 최종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 성향 따라 찬반 팽팽=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동성애 결혼을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를 각각 들었다. 이례적으로 2시간30분이 걸릴 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미 언론에 따르면 9명의 대법관들은 진보, 보수 성향에 따라 동성애 결혼에 대한 시각이 달랐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은 동성애 결혼을 지지했지만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동성애 허용 여부는 주민투표로 정할 일이지, 헌법과 법원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결혼의 개념은 오랫동안 남녀 간 결합이라는 의미로 쓰였다”며 “(동성애 결혼 허용은) 기존 제도의 편입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애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속도에 비춰볼 때 대법원의 개입이 너무 빠르지 않으냐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반대론자로 알려진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만일 성직자가 동성애 결혼식의 주례를 맡게 된다면 이는 종교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엘레나 카간 대법관은 “동성애 결혼이 허용된다고 해서 이성애 결혼을 해치지 않는다”며 동성애 결혼을 지지했다. 스테판 브라이어 대법관도 결혼은 기본권에 속한다며 거들었다. 캐스팅 보트를 쥔 것으로 평가받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남녀 간 결합 형태의 결혼 제도는 1000년 이상 이어져 왔다”며 “이 문제를 법원이 결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법정에서는 한 방청객이 “동성애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파멸될 것”이라고 외치다가 끌려 나가는 소동이 있었다. 법정 밖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동성애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대선주자들도 입장 갈려=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연방대법원의 심리 직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모든 사랑하는 커플과 가족은 이 나라 어디에서든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동성애 결혼 지지 의사를 밝혔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반대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동성애를 혐오한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결혼은 남녀 간 결합이어야 하며 헌법적 권리가 아니다. 지역별 주민투표로 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 내에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는 지역은 최근 급속도로 확산됐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9개주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36개주로 늘었다. 미국 시민의 70%가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는 주에 살고 있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