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똥방패] 자기 머리 위에 똥을 누는 애벌레 일대기

입력 2015-05-01 02:51
‘에고, 더러워.’ 제 머리 위에 똥을 누는 애벌레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백합잎을 먹고 사는 ‘백합긴가슴잎벌레’는 새와 같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제 몸에 매일매일 똥을 싼다. 그래서 똥은 ‘똥방패’인 셈이다.

중견 시인 이정록씨가 이 애벌레의 흥미 있는 생태를 소재로 그림책을 냈다. 아이의 시선을 투영한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슴 졸이게 하는 애벌레의 일대기를 구성한다.

끄응 끙, 똥구멍을 들어올려 자기 머리 위에 첫 똥을 누는 도입 장면부터 눈길을 끈다. 똥을 지고 밥 먹고, 똥을 업고 친구와 노는 애벌레.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선 부지런히 자기 몸에 똥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다. 시종일관, 똥 얘기가 나오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애벌레의 모습을 ‘초콜릿 통에 빠진 막대과자’ ‘초코파이 방패’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에 비유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똥벌레 가운데 한 마리에게 위기가 온다. 밤사이 내린 소나기에 그만 똥이 다 씻겨 나간 것이다. 곤줄박이 새가 그 틈에 똥방패가 벗겨진 애벌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친구들이 자신의 아침 똥을 똥이 씻겨나간 애벌레에게 나눠줬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등에는 똥이 더 두둑이 쌓인다.

작가는 똥벌레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게만 그린 게 아니라 우정 이야기로 확대해 나간다. 라가치상을 받은 강경수 작가의 밝고 쾌활한 그림 덕분에 똥벌레의 이야기가 더욱 신나게 느껴진다. 그렇게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간 애벌레가 어른이 되기 위해 똥 덩어리를 벗고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는 과정도 은유적이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