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링컨과 ‘2차대전’ 앞에 선 아베

입력 2015-04-30 02:10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위치한 내셔널 몰에는 여러 전쟁 기념물과 함께 링컨 기념관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 기념관 앞에 서면 내셔널 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었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다. 지난 4월 15일은 워싱턴DC의 포드 극장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한 지 꼭 150년 되는 날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날을 국가추모일로 지정했다.

기념관 안에는 링컨의 좌상(坐像)이 있고, 양 옆 벽면에는 그의 뛰어난 두 연설문이 새겨져 있다. 하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고, 다른 하나는 암살당하기 한 달여 전인 1865년 3월 4일의 두 번째 취임 연설 일부다. 미국의 정치·역사학자들이 뛰어난 연설 중 하나로 꼽고 있는 두 번째 취임 연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고…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 우리들 사이의,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내전이 끝나가는 즈음에 미래의 통합과 평화를 얘기한 것이다.

오바마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현지시간) 링컨 기념관을 깜짝 방문했다. 기념관을 둘러본 두 정상은 기념관 앞에서 탁 트인 정면을 바라보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정면 쪽에는 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기념공원 안 기념비에는 미국이 싸웠던 적국 ‘JAPAN’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인류를 위해 자신들이 참전했고, 목숨을 잃으며 싸웠던 나라를 잊지 말자는 취지다.

정의와 통합, 평화를 얘기하는 링컨 앞에서, 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을 바라보며, 과거사를 비틀고 있는 아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바마에게 과거사는 제쳐두고 “앞으로는 우리 더 잘해봅시다”라고 말했을 것 같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