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일은 모순돼 보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도시농업에 열광합니다. 농경민족의 DNA가 우리 몸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일까요? 왠지 그것만으로 지금의 열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도시는 점점 화려해지고 있지만 저변에 불안감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 등으로 공기가 오염된 지 오래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수입농산물로 우리 밥상이 불안해진 지도 제법 됐습니다. 게다가 화려한 도시 뒤에는 엄청난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특히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시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흉악범의 증가입니다.
농사가 죽고 흙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붕괴됐기 때문은 아닐까요?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서울은 중심지만 빼고는 농사짓는 도시였습니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살아있고 먹을 게 풍요롭진 않아도 음식은 믿을 만했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쓰레기는 넘쳐나지 않았지요. 이제 다시 농사짓는 도시를 복원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도시농업 열기도 그 열망 때문이리라 봅니다.
요즘 도시에서 붐이 일고 있는 것이 농사 말고 또 있습니다. 바로 등산과 야영 바람입니다. 부자들에게는 골프 바람이겠지요. 농사를 포함해 이 바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흙냄새가 그것입니다. 흙을 떠난 삶은 불안합니다. 위태롭기까지 합니다. 흙냄새 맡으려는 열망은 살고자 하는 생존의 열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농사의 흙냄새가 진짜라고 봅니다. 호미질 하고 거름 만들고 하는 것이야말로 흙냄새 맡는 진실된 자연과의 소통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물론 다른 것도 소중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흙의 본질보다는 껍질을 맡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입시 경쟁 교육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흙은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근본이라 봅니다. 찌르면 들어가고 파면 파지는, 뭔가 아이들의 몸짓을 받아주는 흙의 품이야말로 아이들의 아픔을 씻어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식생활 교육이 확대되고 있지만 흙과 텃밭과 농사만큼 교육 콘텐츠로 좋은 게 없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실습을 바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갈 데 없는 도시의 어르신들에게도 텃밭처럼 재미있는 소일거리가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원래부터 농사경험이 있어 더욱 의미가 큽니다. 일거리도 없고 용돈도 없고 존재감도 결핍된 어르신들에게 농사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여줄 것입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농부들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관행적인 상업농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수확 위주의 상업농은 살길이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염가의 수입농산물에 대항하려면 질적으로 두 단계 이상 뛰어넘는 대안이 없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수입농산물보다 더 쌀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좀 비싸더라도 질적으로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해야 할 것입니다. 도시농부들은 그런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할 능력도 없지만 좀 비싸더라도 그 가치를 알고 감히 소비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농민들이 FTA 정국을 극복하고 뚫고 나가려면 이런 식의 도시의 우군도 필요합니다만 정작 더욱 중요한 것은 급속히 줄어드는 농민 인구를 보충해주는 것입니다. 바로 귀농귀촌입니다. 도시농업은 귀농귀촌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 아이 우는 소리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게 희망이지요. 도시농업이 도시도 살릴 뿐만 아니라 우리 농촌을 지원하는 훌륭한 우군이 돼 줄 것이라 감히 말하는 까닭입니다.
안철환 도시농업시민協 상임대표
[기고-안철환] 치유와 지원의 도시농업
입력 2015-04-30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