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안에 끝나는 치료가 아닌데 항상 약제를 두 가지씩 챙겨 먹어야 하니 저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죠.” 만성B형 간염 환자 김모(48)씨 말이다. 김씨는 B형 간염 치료를 시작한 지 6년째다. 처음 복용하던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제를 바꿨으나, 바꾼 치료제에도 내성이 생겼다. 일이 바빠 약 복용을 자주 깜빡한 탓이었다. 두 가지 치료제를 매번 챙겨 먹어야 해 치료 어려움도 배로 늘었다. 김씨와 같은 ‘다약제 내성’ 만성B형 간염 환자는 우리나라에 8000여 명에 달한다. 다약제 내성이란 한 가지 이상의 만성B형 간염 치료제에 내성을 나타낸 환자를 말한다. 기존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급여 지침에 따르면 서로 다른 계열의 성분이 포함된 치료제 2가지를 동시에 복용해야만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치료 특성상 ‘병용요법’이 내성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리어드가 출시된 이후 상황이 변했다. 이 치료제는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뛰어나 다약제 내성 환자도 한 가지 치료제만으로 충분히 치료효과를 보였다. 환자들을 위해 먼저 움직인 것은 전문가들이었다. 다약제 내성 환자도 한 가지 치료제 복용을 통해 바이러스 수치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임상연구로 입증했다. 이에 복지부가 연구 결과를 반영해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지난달 14일자로 복지부는 다약제 내성 만성B형 간염 환자들이 앞으로 비리어드 한 가지만 복용하는 경우에도 건강보험급여를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환자는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2가지 치료제를 모두 복용해야 건강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1개 치료제만 복용해도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B형 간염 치료는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환자 입장에서는 비용이 부담이 됐었다. 실제 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두 가지 약을 먹던 환자가 하루 한 알만 먹는 경우, 환자당 연간 최대 71만원까지 치료비용이 줄게 된다.
복용해야 하는 약의 가짓수가 줄어든 것은 치료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임상현장의 의견이다. 임영석(사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만성B형 간염은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약제를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은 약물 간 상호작용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한 치료제 종류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항바이러스 치료의 경우 환자 복약 순응도를 높이는 것이 바이러스 수치를 낮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데, 복약순응도 제고 측면에서는 복용하는 치료제가 적을수록 환자들이 더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1일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만성B형 간염 건강보험급여 기준에 의하면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기존 치료제에 부작용이나 내성이 없더라도 치료제를 바꿀 수 있다. 기존에는 내성이 발생하거나 치료 반응 불충분, 심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한 새로운 치료제로 교체 투여하는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때문에 새로운 치료제가 출시돼도 환자들은 기존 치료제의 치료 효과가 유지되는 한 계속해서 기존 치료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번 급여 기준 개정으로 복약 순응도를 높이거나 비용효과성 측면에서 새로운 치료제로 교체 투여하고자 하는 경우,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된다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부는 이러한 건강보험 혜택이 현재 만성B형 간염 약을 먹고 있는 약 18만명의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다.
만성B형 간염 치료는 ‘마라톤’으로 불린다. 마라토너들이 최고 성적을 내기 위해서 ‘발이 편한’ 운동화에 집착하듯이 만성질환 환자들에게는 경제적, 치료 방법적 측면에서 ‘부담이 적은’ 치료법이 선호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급여혜택 확대는 많은 만성B형 간염 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전망이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media.co.kr
“그 간(肝) 고생 하셨죠”… 만성 B형간염 다약제 내성 환자 한가지 약으로도 치료 가능 입증
입력 2015-05-04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