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사려야지 이럴 때 뭘 추진할 수 있겠어요? 조용히 일하고 운동이나 하며 지내는 거죠.” “일은 하고는 있는데… 머리 아프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3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은 뒤 서울시교육청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런 분위기가 교육청 직원들에게 낯설지는 않다. 공정택·곽노현 전 교육감 시절에 ‘설마’가 ‘현실’이 되는 일을 이미 경험했다. 공 전 교육감, 곽 전 교육감이 중도 낙마할 때는 직선제 교육감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은 다물고 눈치를 살피는 ‘처세법’이 몸에 밴 모습이다.
◇누구를 위한 직선제인가=교육청 직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버티다 새로운 교육감이 오면 그 이념 성향에 맞춰 ‘진보 모드’ ‘보수 모드’로 변신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르다. 생애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학창시절은 일생에 한 번뿐이다. 직선제 교육감 등장 후 교육정책의 안정성이 훼손되면서 교사, 학생, 학부모는 수시로 혼란에 빠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고교선택제다. 거주지와 상관없이 서울시내 원하는 고교에 지원하게 해 학생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보수성향의 공 전 교육감이 도입한 것으로 중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제도다.
고교선택제는 진보성향의 곽 전 교육감이 당선된 뒤 폐지 논의가 급부상했다. 곽 전 교육감이 후보 매수혐의로 중도에 낙마하고 문용린 전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폐지 의견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조 교육감 당선 뒤 다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도 냉·온탕을 오갔다. 곽 전 교육감은 2009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시작한 혁신학교를 서울에 이식했다. 반면 문 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특별대우한다”며 예산을 대폭 깎았다. 조 교육감 들어 부활한 혁신학교는 ‘서울형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올해만 100곳이 지정될 예정이다.
자사고는 정반대다. 조 교육감이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 하자 학부모들이 집회를 벌이는 등 갈등을 빚었다. 교육부는 장관 동의 없이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최근에는 서울외국어고와 영훈국제중 지정 취소 문제로 서울시교육청과 학부모가 대립하고 있다.
◇‘사방이 적’, 갈등 증폭시키는 직선제=인사·예산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 권한은 막강하다. 지역교육장 인사권도 행사한다. 서울시장이 구청장 임면권을 보유한 것과 비견될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많은 걸 누린다. 그래서 갈등은 전방위적이다.
교육감이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와 균형, 견제 관계를 유지하며 교육 자치를 구현하기 어렵다. 특히 교육감 공약이 중앙 정부나 시도지사 공약과 차이가 있을 때는 ‘벼랑 끝 대치’를 피하기 어렵다.
학교폭력 처리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문제를 두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법적 다툼을 벌인 건 일부에 불과하다. 교권에 방점을 찍은 보수진영과 학생인권을 강조하는 진보진영은 수시로 부딪히면서 고질적인 학교현장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시의회를 장악한 진보진영과 보수성향 교육감이 맞서기도 했다. 문 전 교육감은 혁신학교 예산을 확대한 서울시의회 결정에 반발해 ‘예산 부동의’라는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직선제로 실험적 공약이 난무하고 인기영합·정치적 공약을 이행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됐다. 이는 학습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도경 정부경 기자 yido@kmib.co.kr
[이슈분석] “앞으로 어떻게 될지…” 손 놓은 서울교육청 직원
입력 2015-04-29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