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대통령의 정국인식, 국민 여론과 괴리 크다

입력 2015-04-29 02:50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와병을 이유로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독했다. 그러나 메시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 정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국민 여론과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자세로 어떻게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해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 다수 국민들이 기대했던 ‘사과’를 하지 않고 ‘유감’ 표명에 그쳤지만 고심 끝에 결정한 용어 선택을 존중하고자 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기록된 금품수수 의혹이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 표명조차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국민 메시지에 ‘측근 정치인의 금품수수’나 ‘대선자금’에 대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없다. 자신과 직접 상관 없는 사건임을 은연중 강조한 셈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패 척결’과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사 의혹 규명’을 특별히 강조한 것도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전자의 경우 ‘성완종 리스트’에 적시된 8명의 정치인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 인사들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을 검찰에 공개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개혁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지만 야당을 직접 겨냥한 것은 다소 의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즉각 ‘선전포고’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이 특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언급한 것도 예상 밖이다. 정치적 논란거리이자 국민 관심사이긴 하지만 이 문제는 이번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특사는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고유 권한이며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이뤄진 두 번째 특사가 설령 부적절했다 하더라도 도덕적 비난거리일 뿐 검찰이 수사할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수사 전선 확대를 통한 물타기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4·29재보선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여당을 돕기 위해 간접 선거운동을 했다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대통령 발언으로 검찰에 큰 부담을 안겨준 꼴이다. 박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특사를 남발하지 않는다는 긍정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박 대통령이 지금 할 일은 검찰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사에 엉뚱한 간섭을 할 경우 엄청난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현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국정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국무총리 공백을 하루빨리 메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