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제가 생각해도 빛과 음영 부분을 참 잘 처리했어요. 감정을 전달해야지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비트’는 다시 봐도 감격스럽습니다.”
미국에 팀 버튼, 일본에 스튜디오 지브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이 사람이 있다. 40년간 외길인생을 걸어 온 만화가 허영만(67) 화백 얘기다. 그가 지금껏 그린 만화만 215편. 이 중 ‘타짜’ ‘비트’ ‘각시탈’ 등 서른 개가 넘는 작품이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화 됐고 대표작 ‘식객’의 경우 300만 부나 팔려나갔다.
허 화백의 만화 인생을 조명한 전시회가 29일부터 오는 7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예술의전당에서 우리 만화가가 전시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에게 40년을 정리하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표현했다. 일일 도슨트로 나선 그는 작업 당시의 일화를 술술 풀어냈다.
15만장 원화와 5000장이 넘는 드로잉 중 선별된 500여점이 전시된다. 만화 도구와 소장품, 화실 벽에 붙어있던 쪽지, 취재 노트와 만화 일기까지 작업실을 둘러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음식’ ‘야구’ ‘태권도’ 등 그가 다뤘던 다채로운 소재가 소개되고 건축가 정성철, 팝아티스트 이동기 등의 오마주 작품, 문하생이었던 ‘미생’ 윤태호 작가의 원화도 몇 점 공개된다.
특히 초기작이자 대표작 ‘각시탈’의 원화 전 분량이 통째로 펼쳐진다. 작업실에 있던 원고를 40년 만에 발견, 복간작업을 거쳐 내놓는 것으로 한국 만화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글귀 하나하나를 덧붙인 말 풍선부터 세밀한 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한원석 H lab 소장은 “허영만은 순수 작가보다 훌륭한 드로잉과 필력까지 갖췄다”며 “그가 단순한 만화가가 아닌 것처럼 이번 전시도 단순한 만화 전시를 뛰어 넘는다”고 말했다. 정형탁 큐레이터는 “50대는 ‘각시탈’을, 20∼30대는 ‘식객’과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억하더라. 각자의 가슴 한 편에 가지고 있던 캐릭터를 꺼낼 수 있는 전시”라고 했다.
허영만의 만화 인생은 여전히 흐른다. 지난 1월부터 한 일간지에 ‘커피 한 잔 할까요?’를 연재 중인 그는 “사실 잠이 안 와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한다”며 웃었다.
“일본의 유명한 낚시 만화가는 20년을 그렸는데도 낚시를 못한다고 하대요. ‘각시탈’도 태권도 유단자여서 그렸던 건 아니고요. 커피도 흥미를 느껴 열심히 배우며 그리고 있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공부해나가면서 그리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만화 외길 40년 초기작 ‘각시탈’ 원화 공개… 예술의전당 첫 국내 만화가 전시 ‘허영만 화백展’
입력 2015-04-29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