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43·여)씨는 20대에 공장에서 일하며 힘들게 번 돈으로 가게를 차리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의 사기로 돈을 모두 날리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거리에 나앉았다. 불안과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시설에서의 공동생활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쉼터 생활을 하면서 조울증 치료와 재활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고, 개인파산 면책을 통해 신용을 회복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땄으나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서울시의 보도상 영업시설물 창업 지원을 신청했고 드디어 한 평 반의 자기 자게를 운영하는 꿈을 이루게 됐다. 바리스타 교육까지 받고 가판대 운영을 시작하는 정씨는 꼭 성공해서 노숙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서울시는 정씨처럼 자활의지를 갖고 노숙생활을 벗어나려는 노숙인을 위해 전국 최초로 가로가판대, 구두박스 등 보도상 영업시설물의 창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시는 지난달부터 지속 가능한 일자리 발굴 및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가로가판대와 구두박스 8곳을 시범 운영한 후 올해 안에 50여 곳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3년 8월 ‘서울특별시 보도상 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노숙인들에게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 시내에는 가로가판대, 구두박스 등 보도상 영업시설물이 2000여 곳이 있다. 이 중 개인 사정 등으로 인해 폐업 예정인 가로가판대 중 이익창출이 가능한 곳을 선정해 노숙인과 매칭하는 형태로 지원하게 된다. 지원대상은 시설 입소·이용 노숙인 중 시설장의 추천을 받아 자기소개서, 기존 저축액, 근로활동기간 등을 점수화해 선정하게 되며 지원기간은 최장 6년이다.
현재 가로가판대를 지원받아 창업한 노숙인은 8명이고 이달 말까지 4명이 추가될 예정이다. 서울시가 운영 중인 점포의 매출이 많은 곳은 하루 2∼10만원, 순익은 1∼6만원에 달한다.
가로가판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도로점용료, 시설대부료, 판매물품 비용 등 500만원 내외의 개인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이에 서울시는 기업과 개인 기부를 연계해 노숙인들의 창업 초기비용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노숙인의 안정적인 점포 운영을 위해 운영, 마케팅, 후원 등 다각적인 도움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의 자활·자립에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데도 그동안 일자리 사업은 공공근로, 민간분야 일용직 등 단기 일자리가 많았다”며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노숙인이 주체가 된 협동조합 등을 적극 지원해 다양한 사업적 기업이 창출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두바퀴, 빅이슈코리아, 살기좋은마을, 희망식당 등 노숙인 관련 사회적 기업 5개가 영업 중이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노숙인들에게 ‘인생 2막 희망점포’를 드립니다… 서울시, 가판대·구두박스 창업 전국 최초로 지원
입력 2015-04-29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