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네팔 대지진] “승합차에서 쪽잠 자고… 빗물 받아 겨우 식수로”

입력 2015-04-29 02:44
네팔 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카트만두에서 인천공항까지 운항한 대한항공 KE696편 승객들이 28일 새벽 인천공항에 내려 분주하게 입국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도착했어? 아픈 데는 없고? 배고프진 않아?”

네팔로 트레킹을 떠난 아내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은 전광판에 착륙 사인이 뜨자마자 손에 쥔 휴대폰으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지진 발생 후 국내로 돌아오는 첫 항공편인 대한항공 KE696이 28일 오전 1시쯤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승무원을 빼고 236명이 탑승했다. 한국인 승객은 104명이었다. 전날 오후 11시20분쯤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카트만두 공항 상황이 좋지 않아 2시간 가까이 연착했다.

27일 자정쯤부터 인천공항 입국장 B게이트 앞으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들 내외가 네팔에 산다는 한 노인은 “며느리가 휴대전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전원을 꺼뒀다 켰다 하며 간신히 연락을 주고받았다”면서 “며느리와 손주만 이번 비행기로 돌아온다. 현지에 남은 아들은 며느리와 손주가 비행기에 오른 뒤에야 쪽잠을 자던 승합차에서 나와 처음 다리를 뻗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오전 1시22분, B게이트 출입문이 열리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는 고산병 탓에 휠체어 신세를 진 권정옥(47·여)씨였다. 남편 김현수(51)씨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권씨는 대한산악연맹 구미지역 소속으로 일행 5명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중이었다. 해발 4910m 높이의 로부제 산장에 머물렀다. 지진 당일 아침에는 고산병 때문에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내려갔고, 지진은 그 뒤에 발생했다. 험준한 산에서 지진을 맞닥뜨릴 뻔했던 권씨를 고산병이 구해준 셈이다. 권씨는 “도착한 병원 건물도 지진에 일부가 무너졌고, 그때 다친 사람들은 병원 바닥 곳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용식(63)씨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해 지난 16일 출국했다. 그는 “해발 2500m 고지에 있었는데 산 전체가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당시 심경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학원생 신재원(29)씨는 “전기 공급이 원래 안정적이지 않은 곳이지만 지진 이후 더욱 심각해졌고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쓰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네팔에서 7년째 장학사로 활동해온 정순자(70)씨도 이 비행기로 돌아왔다. 정씨가 근무하던 ‘퓨처스타 학교’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토요일이라 학생이 없었던 건 다행이지만 학생들 집도 대부분 무너져 생사를 알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씨는 길거리 천막에서 지내다 천막에 빗물이 차는 바람에 거처를 승합차로 옮겼다고 했다. 나흘째 같은 옷을 입었고, 식사는 하루에 한 끼도 먹기 어려웠다고 한다. 카트만두 공항까지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버스 운행이 중단되자 택시들은 원래 요금의 10배 이상을 불렀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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