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정종성] 대학은 살아나라!

입력 2015-04-29 00:03

대학예비학교에서 퇴교를 당한 17세의 미국 고교생 홀든 콜필드는 크리스마스 휴가 사흘에 걸쳐 허실과 부조리로 가득한 대도시 뉴욕을 방황하는 외로운 방랑자다. 황금만능과 물신주의의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공룡도시에서 불안과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콜필드는 거대한 호밀밭에서 정신없이 뛰어놀고 있는 청소년들을 걱정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호밀밭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청소년들을 잡아주는 ‘캐처’(파수꾼)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학창시절 깊은 감동과 더불어 진로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제롬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의 내용 일부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필독서로 선정되고 하버드대학교에서는 별도의 강좌를 개설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이 소설은 살아 있음의 기본적인 느낌이나 경험마저 마비돼 가는 비정상적인 미국 주류사회에 대한 지적 도전이었다. 비록 퇴폐적이고 부도덕한 면을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참된 인간애와 순수를 추구하면서 병든 사회의 파수꾼이 되기를 자청하는 새로운 ‘아메리칸 아담’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은 바로 이런 ‘파수꾼’의 꿈을 일구는 인문학(Liberal arts), 즉 ‘교양 교육’의 산실이다. 교양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탐색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융·복합적 창의력과 협업 정신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그 공적 영역에 머무는 동안 학생들은 예언자적 정의감을 기르고 균형 있는 비판력을 배운다. 또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윤리적 감성을 계발함으로써 기존 사회의 무한 경쟁적 시장 근본주의나 독선적 종교 극단주의, 그리고 배타적 정치 이데올로기에 맞설 ‘민주적’ 용기를 함양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기업들이 사활을 걸 정도로 훨씬 더 높다. 인문학 열풍의 진원은 바로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에 자극 받은 한국 기업들이 먼저 ‘잡스 같은 인재’, ‘애플 같은 제품’을 표방하며 우후죽순으로 인문학 콘서트나 강좌 등을 열었고, 심지어 기업총수들을 위한 인문학 과외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기업의 인문학 열풍과는 반대로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학은 초토화되고 있다. 지난해 대학에서 폐과된 학과 137개 중 인문계열 학과(29.9%)와 사회계열 학과(25.9%)를 합치면 50%가 훌쩍 넘는다. 기업 쪽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히려 인문학의 본산인 대학에서는 관련 학과가 줄줄이 폐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전락하면서 대학 본래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잃어버린 것, 즉 ‘인문학의 황폐화’가 가장 큰 원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신학 역시 인문학적 토양에서만 ‘교회와 세상을 살리는’ 신학으로 자랄 수 있다. 인문학적 자양분이 거세된 신학은 중세 1000년을 공포로 떨게 했던 ‘죽음의 문법’으로 돌변하게 된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뼈처럼 생명을 잃고 골짜기에 누워 있는 공동체를 향해 “살아나라”고 외쳤다(겔 37:1∼14). 대학은 청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미래의 ‘파수꾼’으로 일어서게 할 선지적 책임이 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가슴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강한 피부가 덮이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인문학은 곧 대학의 생기다.

정종성 교수 (백석대 기독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