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어디에나 이야기가 있다

입력 2015-04-29 02:10

나는 5년째 수영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뭐든 시들해지곤 한다. 지금 다니는 수영장에는 사람이 꽤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샤워실에서부터 사람들 틈에 치이다 지친다. 5분마다 시계 보기를 몇 번, 정작 수영은 30분을 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수영장이 싫은 건 아니다. 이곳에는 어른 10명이 앉으면 꽉 차는 자그마한 찜질방이 있는데 거기서 오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걸 듣다보면 어떨 땐 저 나이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사는 게 뭐 별건가 삶을 체념하기도 하고, 저 이야기를 하는 의도는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의 늙고 처진 살과 한 번쯤 큰 수술을 했던 흉터가 보이기도 했다.

젊은 사람이 없진 않지만 수영장에는 보통 50, 60대 혹은 그보다 나이 든 분이 더 많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 묻는 일이 간절하고, 누군가가 오래 보이지 않으면 혹여 세상을 떠난 게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수영장 물은 그들의 눈물, 콧물 그리고 그 밖의 무엇이 뒤엉켜 오후에는 눈에 보일 만큼 더러워져 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겠지. 다행인지 아닌지 물을 더럽힌 우리가 다시 그 물을 먹는다.

오늘 찜질방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일하는 며느리가 밖으로만 나돈다며 험담을 했다. 다른 아주머니는 딸이 원치 않은 남자와 결혼한 이야기를 했고 또 다른 아주머니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릎 위에 앉혀놓고 예뻐하셨다며 그 사랑을 못 잊어 시아버지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셨다 했다.

나는 화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고개 들어 그들을 쳐다봤지만 다음 날이면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잊었다. 다만 이야기만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내 이야기도 저 무수한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수영장 물이 조금 덜 더러웠으면 한다. 그러면 5분이라도 더 수영을 할 텐데, 그러면 오랫동안 해온 일이 지겨워지더라도 좀 더 지속할 힘이 생길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