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지진 희생자 가운데는 에베레스트산의 베이스캠프에서 산악전문 의사로 활동해온 20대 여성도 포함돼 있어 전 세계 산악인들이 애도하고 있다고 AP통신이 27일(현지시간)전했다.
미국 시애틀 소재 등산서비스 업체인 매디슨 마운티니어링 소속 의사인 머리사 이브 지라웡(28·사진)은 지난 25일 눈사태가 닥친 베이스캠프 현장에서 숨졌다. 그녀는 등반시즌이 되면 늘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산악인들의 안전을 돌봤다. 그녀는 지진이 발생하기 불과 몇 시간 전 그의 페이스북에 “28일째 고된 여정. 눈은 오고 내 식탐은 최고조”라며 농담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진 발생 뒤 미처 밖으로 대피하지 못한 노인 사망자도 속출했다. 카트만두에 살았던 부모를 잃었다는 비제이 나카르미(55)씨는 AP통신에 “지진 뒤 부모님 집에 갔더니 3층 건물에 살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참한 모습으로 숨져 있었다”며 “며칠 전 ‘어머니의 날’에 뵈었던 게 영원한 이별이 됐다”고 울먹였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덮쳐 최소 19명을 숨지게 한 산사태 순간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눈을 피해 텐트 속으로 뛰어들어갔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희생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눈사태를 목격한 미국인 존 케드로브슈키는 “텐트 안으로 피한 사람은 불운했다. 텐트에 휘말려 날아가 바위나 빙하에 떨어졌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했다.
안타까운 소식이 넘치지만 가까스로 희생을 모면한 이들의 사연도 알려지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던 그리스 등반대의 경우 네팔에서 도둑을 맞은 것이 전화위복이 돼 대지진의 화를 면했다. 그리스 공영TV 네리트는 자국 산악인 9명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가 가이드를 맡은 네팔인 셰르파가 돈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에베레스트 등정을 포기하고 대지진 발발 전날 귀국함에 따라 다행히 화를 모면했다고 전했다.
에베레스트에서 두 차례나 눈사태를 겪고도 살아남은 이도 있다. 올해까지 3년 연속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미국인 존 레이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눈사태를 만났다. 7대륙 최고봉 가운데 에베레스트만 오르지 못한 그는 2013년 첫 도전 때는 몸이 좋지 않아 포기했고 두 번째 등반을 시도한 지난해 4월에는 셰르파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규모 눈사태를 만나 발길을 돌렸다. 레이터는 세 번째인 올해 도전에서는 베이스캠프에서 눈사태를 겪었지만 다시 살아남았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내년에도 또 에베레스트로 가게 될 것”이라며 “내년에도 그의 산행을 말리지는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 여성 애슐리 스텀러는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 그녀는 최근 며칠간 이번에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베이스캠프에 머물다 지진 발생 전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현장을 떠난 덕분에 참사를 면했다.
또 대지진 당시 카트만두를 여행하던 중국인 여성의 경우 현지 주민들의 보호 속에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청년보에 따르면 친구들과 함께 네팔을 여행 중이던 황징야오씨는 25일 낮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에 있다가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진을 겪은 적이 없어 당황하던 차에 주변의 상점 주인이 이들을 담 모퉁이로 잡아끌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보니 자신들이 서 있던 도로 곳곳이 갈라지고 전봇대가 쓰러져 있는 등 거리가 온통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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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8 03:07 수정 2015-04-28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