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박 대통령의 링거 순방

입력 2015-04-28 02:05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을 순방하고 귀국했다. 순방 중 편도선이 붓는 바람에 기침과 고열, 복통에 시달렸고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9박12일간의 취임 후 최장 해외순방이다. 검진 결과 과로로 인한 위경련과 인두염이라고 한다. 귀국하는 전용기 내에서도 링거를 맞고 기자간담회도 취소했다니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순방 성과도 많았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지구 반대편 중남미까지 정상외교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환태평양 외교를 강화함으로써 중남미 국가와 고부가가치 창출, 공동시장 구축, 지식·경험 공유 등에서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청와대는 자평했다.

외교성과에 관심 없는 국내 여론

그런데 이런 장황한 순방 성과가 지금 국민들 귀에 들어올지 의문이다. 당장 ‘성완종 리스트’로 어수선하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국익을 위해 강행군했는데, 순방 성과에 대한 관심은 없고 ‘성완종 리스트’ 같은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이 매우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1999년 김대중 대통령도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외교성과보다 옷로비 사건에 대한 질문만 나오자 역정을 냈다. “나이 먹은 대통령이 몽골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신문은 기껏 1단밖에 안 쓰고, 실체 없는 옷로비 사건은 대서특필하고.”

박 대통령은 출국하는 날부터 일정이 꼬여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참모들이 하필이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순방을 떠나도록 계획을 짠 것부터 문제였다. 콜롬비아 방문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했다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얘기다. 국익을 위한 외교가 중요하지 세월호 1주기 행사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출국날 오전 팽목항을 찾았으나 유족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어 이완구 국무총리 경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긴급회동을 하느라 출국시간을 3시간 늦추기도 했다. 심란하고 불쾌한 마음을 안고 순방길에 올랐을 것이 틀림없다. 박 대통령은 고산병이 목으로 온 모양이라고 말했으나 국내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국익을 위한 외교가 국내 문제로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되겠지만 내정은 외교의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번 순방은 이래저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하필이면 이때 긴박하게 움직였다.

내정은 외교의 시작이라는 말 실감나

박 대통령이 칠레 교민들을 만나고 있을 때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60주년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났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와 영원히 보조를 맞출 것 같았던 중국이 일본과 손을 잡는 모양새다. 일부 외교전문가들은 요즘 한반도 정세를 볼 때 박 대통령이 남미가 아니라 반둥회의에 갔어야 했다는 얘기도 한다. 다자외교나 양자외교, 세일즈외교 모두 국익을 위해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로 볼 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영어 시험을 앞둔 학생이 수학도 중요하다며 수학 공부를 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은 더욱 심상치 않다. 박 대통령이 귀국길에 오를 때 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일본이 밀착하는 시그널이다. 우리만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 앞에 국내외적으로 많은 숙제가 쌓여 있다. 이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남은 임기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