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50년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무엇 하나 허투루 이뤄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충남 금산의 한의사 집안에서 자란 것도 그렇고, 그 덕에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더 큰 비전을 위해 2003년 4월 삶의 터전을 뉴질랜드로 옮긴 것까지….
솔직히 지금의 나는 뉴질랜드에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현지에서 사기를 당했고, 온갖 협박에 시달렸다. 뉴질랜드 노농부나 이민성에 계속 불려다니며 조사 받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되기도 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갑자기 닥친 화재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정말 살기 힘들었다.
후회로 가슴을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나온 허상에 사로잡혀 목 놓아 울었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 전, 그러니까 하나님을 몰랐을 때의 나는 돈 잘 버는 소위 성공한 여성 사업가였다. 한방 화장품을 접해서 3개월 만에 투자한 돈을 다 벌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영업사원 30명을 두고 월 매출 4000만∼5000만원을 올렸다. 약품 회사들을 다니면서 건강 강좌에 미용 강좌까지 열었다. 하루에 나 혼자 500만원 이상의 화장품을 팔아본 적도 있다. 게다가 경매에까지 눈을 떠 당시 다섯 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콘도 회원권도 2개나 됐다. 그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까지 내 삶이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특히 자녀에 대한 욕심이 컸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뉴질랜드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돈이 있으니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한국에서의 삶이 그곳에서도 계속될 줄 알았다.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경의 열매’라는 지면에서 내가 풀어갈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주어지는 ‘인생의 대반전’. 그건 은혜이고 축복이다. 기독교 박해의 선봉장이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난 뒤 어떻게 달라졌는가.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선봉장이 됐다. 그렇게 사도 바울은 인생의 축복을 누렸다.
나 역시 그분을 만나고 뉴질랜드에서 한의학을 접목한 ‘컬러테라피’를 연구·개발하게 됐다. ‘컬러테라피’는 모든 종류의 색채 스펙트럼을 이용해 병을 치유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다. 이를 계기로 힐링센터와 한의원을 갖춘 ‘아큐플러스클리닉’을 설립했다. 또 뉴질랜드 한의대도 세웠다. 실제 우리 주변을 보면 주님을 믿고 반전의 삶을 사는 역전의 용사들이 참 많다. 그런 신앙의 간증을 들려주고 싶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13)
◇약력=1965년 전북 진안군 출생, 중국 남양중의대 졸업, 수원여대 피부미용과 졸업, 건국대 대학원 생물공학과 화장품공학 수료, 뉴질랜드 한의과대학 졸업. 저서 ‘24시간 건강 생활법’ ‘한방 성형 황후 침법’ ‘아큐플러스 오행침’ ‘컬러테라피’ 등. 뉴질랜드 한의과대학 이사장 역임, 인터콥 순회선교사, 뉴질랜드 아큐플러스클리닉 원장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현숙 (1) 한의사 집안 소녀의 ‘컬러테라피’ 인생 대역전
입력 2015-04-29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