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이 지난달 검찰의 첫 압수수색이 있기 1시간 전쯤 비서실 여직원을 시켜 성 전 회장 다이어리 등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경남기업 측이 수사에 대비해 은닉한 증거 일부를 확보했다. 검찰은 1차 자료 분석 및 성 전 회장 측근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번 주부터 금품 메모에 적힌 8명의 주변 인물들로 수사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26일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은폐·은닉 행위를 발견했다”며 “일부 은닉된 것(자료)은 잡은 것(확보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이날 성 전 회장을 12년간 보좌한 비서실 이용기(43) 부장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박진영 영장당직판사는 “구속 사유와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됐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25일 먼저 구속된 박준호(49) 전 상무에 이어 성 전 회장 측근 2명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수사팀은 경남기업 1차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난달 18일 오전 6시35분쯤 이 부장이 성 전 회장의 여비서 C씨에게 전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C씨는 검찰에서 “이 부장이 ‘회장님 책상을 치우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C씨는 당시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와 메모 등 A4용지 박스 절반 분량의 자료를 지하 1층 창고에 옮겨놓았다고 한다.
다이어리에는 올 1∼3월 성 전 회장의 일정과 접촉한 인사 등이 적혀 있었다. 성 전 회장의 최근 행적 및 ‘구명 로비’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 단서인 셈이다. 그러나 이 부장은 “여비서에게 ‘회장님이 일찍 출근할 수 있으니 서둘러 나오라’는 전화를 했을 뿐”이라며 증거인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수사팀은 2차 압수수색 전인 지난달 25일 박 전 상무 등의 주도로 사내 CCTV를 끈 채 회계장부 등을 파기하거나 트럭째 빼돌린 사실도 파악했다. 검찰은 이후 재무부서 과장의 자택 장롱에서 계열사 대여금 인출 내역이 담긴 장부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관계 로비 내역이 담겼다는 ‘비밀장부’의 존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구속된 측근 2인방은 “그런 장부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사팀의 증거 수집 범위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기존 경남기업 경영비리 수사 때의 범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아닌 ‘성완종 수사’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미 수사가 한 차례 진행된 경남기업의 부외자금 등을 다시 살필 뿐 정치인 조사 등의 본론으로는 진입하지 못한다는 조바심의 해석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본류와 지류는 만나게 돼 있다”며 증거인멸과 금품수수 수사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사팀은 이날까지 성 전 회장 측근들을 수시로 불러 금품 제공 의혹 주요 시점별로 성 전 회장의 동선을 상당부분 복원했다. 운전기사 여모(43)씨와 수행비서 금모(40)씨 등이 관련 조사를 받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기초자료 분석을 마치고 심층적으로 조각을 맞춰가는 중”이라며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어떤 분이 (수사 대상으로) 유력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이경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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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책상 치우라” 이용기가 지시
입력 2015-04-27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