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받은 등록금을 적립금으로 쌓아두고 교육에 투자하지 않은 사립대학에 등록금 일부를 토해내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송경근)는 채모씨 등 수원대 학생 50명이 학교법인,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법원은 학교가 원고 중 2013년 이전에 입학한 44명에게 각각 30만∼90만원씩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거액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교육 투자에는 인색한 다른 사립대에서도 유사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무분별한 ‘적립금 관행’에 첫 제동=재판부는 수원대가 적립금과 이월금을 부당하게 운영한 점을 지적했다. 수원대는 2010∼2012년 착공이 불가능한 건물의 신축공사비를 예산으로 잡는 등 세출 예산을 과다 편성했다. 장차 건물 공사비에 쓸 돈이라는 명목을 붙여 적립금으로 이월하는 돈을 부풀린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만 907억원이 적립됐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쌓지 못하게 막았지만 건축비만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수원대는 또 적립금 사용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아 2013년 2월 기준 적립금이 무려 3244억원을 넘어섰다.
반면 학생들을 위한 교육 투자에는 인색했다.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는 각각 0.88%와 0.25%에 불과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 평균인 2%대에 크게 못 미쳤다. 또 2010년과 2011년에는 기준상 100%를 넘어야 하는 교육비 환원율이 70%대에 그쳤고, 2011∼2012년 전임교원 확보율도 기준에 미달했다.
재판부는 “수원대의 시설·설비 등이 현저히 미비할 뿐 아니라 원고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당시의 기대와 예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학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할 만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학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등록금 일부를 위자료로 인정했다”며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들, 학생과 고통 분담해야”=전국의 4년제 대학, 전문대 등에 쌓인 적립금은 2013회계연도 기준으로 11조8171억원이나 된다. 이화여대가 8207억원으로 가장 많고 연세대(6651억원) 홍익대(6641억원) 순이다. 대학 적립금 규모는 2000년의 3조9000억원에서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등록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의 2∼3배 뛰면서 배 이상 비싸졌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곳간’에 쌓아두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교육부는 목적이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을 ‘특정적립금’으로 바꾸고 학생취업 장려기금 등으로 쓰게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2013년 말 국회에 제출했다. 기타적립금은 전체 적립금 규모의 30% 정도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여야 간 쟁점이 없는 법안인데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들은 적립금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거액의 적립금을 쌓아놓은 건 일부 대학에 국한된 얘기인데 언제나 등록금 인상 반대 논리로 활용돼 안타깝다”며 “적립금은 결국 학생을 위해 쓰일 돈이다. 이는 대학 경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학교육연구소 박거용 소장(상명대 교수)은 “고액 등록금을 내고도 졸업 후 일자리를 못 구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라며 “대학은 적립해 놓은 돈으로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등록금을 인하하는 고통분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도경 정현수 기자 yido@kmib.co.kr
돈 쌓아놓고 투자 인색한 대학… 법원 “등록금 환불하라”
입력 2015-04-27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