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獨학교 ‘에너지 탐정’ 수업… 아이들에 ‘절약 DNA’ 심어

입력 2015-04-27 02:57
지난달 26일 독일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뮐레나우 초등학교에서 만난 6학년 학생들. 한 달간의 에너지 탐정 프로젝트 활동 결과에 대해 발표한 뒤 기념쵤영을 하고 있다.
2002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교실별 온도 측정표를 만들어 어느 교실에서 에너지 낭비가 심한지 측정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독일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뮐레나우(Muhlenau) 초등학교 6학년 B반 교실. 체육 수업을 앞둔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후고 볼츠(12)군과 라일라 말렉(12)양이 온도계를 들고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온도계가 18도를 가리켰다. 볼츠군은 “오전 내내 난방을 해서 교실이 필요 이상으로 뜨겁다”며 “선생님께 난방을 2시간 정도 꺼달라고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다. 말렉양은 환기를 위해 열어뒀던 창문을 하나하나 닫았다.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거예요. 공놀이를 하고 들어와서도 따뜻하게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두 학생은 ‘실내 온도는 적정한가’ 등의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기록한 뒤에야 체육관으로 향했다.

볼츠군과 말렉양은 B반의 ‘난방 탐정’이다. 실내의 열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화장실 수도꼭지를 수시로 잠그는 ‘수도 탐정’과 아무도 없을 때 전등을 끄는 ‘전등 탐정’도 있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환경교육 단체인 ‘환경문제를 위한 독립 연구소(UFU)’와 손잡고 벌이는 ‘에너지 탐정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탐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B반의 전등 탐정인 팀 비륵흘츠(12)군은 아예 전등 스위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 불은 끄고, 반대 쪽 불만 켜둔다. 각 반마다 2명이 한 팀을 이뤄 에너지별로 분야를 나눠 탐정을 맡는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활동한다. 학기별로 탐정을 바꿔 전교생 660명 누구나 졸업 전까지 한 번씩은 탐정을 맡을 수 있게 했다. 말렉양은 “지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며 “집에 가서도 학교에서 하던 방식대로 엄마 아빠에게 보일러 온도를 낮추라고 잔소리하게 된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에너지 절약

뮐레나우 초등학교의 에너지 탐정 프로젝트는 2002년 시작됐다. 재생에너지법이 제정되고 에너지 전환과 절약에 관한 논의가 한창일 때였다. 뮐레나우 초등학교도 58W짜리 전구를 18W로 바꾸고 학교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헤르츠 볼커 교장은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에너지의 소중함을 직접 가르치기로 결심한 이유다.

학생들은 1년에 20시간씩 에너지 수업을 듣고 있다. 전기와 난방, 자동차 연료와 대형버스를 움직이는 기름 등 어디서 에너지가 오는지 배운다. 학교 내 에너지 흐름은 어떻게 되는지도 직접 눈으로 본다. 이후 탐정 활동을 통해 어떤 잘못된 습관을 고치면 학교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지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비싼 전기료 문제와 함께 독일 내 에너지 수급 구조 등도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학생들이 이해하고 스스로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볼커 교장은 “점점 학생들이 에너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라며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아 주요 과목 수업 시간을 조금씩 줄이고 에너지 수업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나디트 컨 UFU 활동가는 “절약의 미덕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필수적인 작업”이라며 “베를린 인근 학교로 이러한 조기 에너지 교육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한 환경 전문가는 “탈원전 선언으로 에너지 수급 공백이 우려됨에 따라 시민들이 직접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며 “이러한 선진적 시민의식 덕에 독일 내 모든 원전이 사라지는 2022년 이후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독일을 배울 수 있을까

독일의 에너지 소비량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독일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3.82toe(원유 1t이 발열하는 칼로리)였다. 한국(5.27toe)에 비해 20%가량 적은 수치다. 독일 정부는 더 나아가 2017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2001∼2005년 평균 대비 9% 줄이기로 했다.

한국의 상황은 정반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 소비량은 OECD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전력소비는 연평균 5.3% 늘었다. OECD 평균의 5배를 웃돈다. 반면 전기요금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h당 101달러인 데 비해 독일은 388달러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블랙아웃(대정전)도 ‘싼’ 전기를 펑펑 쓰는 데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컨 활동가는 “재생에너지 투자와 절약은 탈원전으로 인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는 독일의 전략”이라며 “국민적 각오와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글·사진 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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