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글을 쓴다는 행위

입력 2015-04-27 02:20

나는 새벽마다 글을 쓴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하루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새벽엔 어김없이 홀로 책상을 마주한다. 글 숙제 마감이 임박해서 스트레스 받으며 쓸 때도 있지만 ‘자유 글쓰기’ 하는 날들이 훨씬 더 많다. 박사 과정을 하는 중에 작문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프리 라이팅(free writing·자유 글쓰기)’에 대해서 배웠다. 글쓰기 장애를 덜어주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써 내려가라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었다. 어디 제출할 것도 아니니 논리적이냐 아니냐, 주제가 좋으냐 나쁘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 적어도 삼십 분은 계속 쓸 것, 그리고 단어만 쓰지 말고 문장으로 쓸 것. 이걸 해 보니 여간 효용이 닿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했고 습관이 되었다.

이 자유 글쓰기로부터 나의 모든 것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의 메모들이 모여 책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아이디어의 방울들이 물줄기가 된다.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는 것은 부수효과다. 이 자유 글쓰기를 하면서 지독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날아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효과다. 몰입에서 나오는 좋은 호르몬, 컨트롤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 함께 작용을 해서 그럴 게다. ‘새벽마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진작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하는 것도, 글쓰기란 나를 지켜주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전쟁 내내 ‘난중일기’를 썼던 이순신 장군, 기나긴 원정 기간 동안 ‘갈리아 원정기’를 일기처럼 썼던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들은 글을 쓰며 버틸 수 있는 용기와 헤쳐 나갈 지혜를 찾았을 것이다. 그들처럼 중차대한 위난을 겪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의 하루하루가 마치 전쟁과도 같으니 우리를 지켜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을 지키고 세워 주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만약 이 시대의 사회적 리더들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직접 자신의 글로 쓰는 능력을 길렀더라면,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양심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