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봄 야생화 가운데 생동감 넘치면서도 단정한 자태를 지닌 꽃을 꼽으라면 단연 얼레지가 아닐까 싶다. 관상용으로 개량한 어떤 식물에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지녔을 뿐 아니라 화려하게 젖혀진 여섯 장의 연보랏빛 꽃잎(실은 석장의 꽃잎과 석장의 꽃받침)은 마치 쇼트트랙이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들이 막 질주를 시작하려는 자세를 보는 것 같다.
얼레지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 우리말이다. 얼레지는 초록색 바탕에 갈색 반점이 있는 것이 어루러기(옛말 어르러지)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전국의 비교적 높은 산 능선 서북 사면이나 저지대 계곡부 사면에 무리지어 자라는데 햇빛에 민감해서 아침 햇살과 함께 꽃잎이 열리기 시작하고 해가 지면 오므라진다. 꽃잎이 활짝 젖혀지면 꽃잎 안쪽에도 W자 모양의 보라색 무늬가 있다.
잎은 2장이 마주보면서 땅 위에 낮게 펼쳐지고 두 잎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온다. 꽃은 암술 하나에 수술이 여섯 개인데 세 개는 길고 나머지 세 개는 짧다. 그리고 암술머리는 3갈래로 갈라져 있다. 꽃잎이나 수술의 개수가 3의 배수인 것은 외떡잎식물의 특징이다.
얼레지는 양파나 달래, 무릇 등 백합과 식물의 혈통이어서 땅속 25∼30㎝의 깊이에 비늘줄기를 가지고 있는 다년생 식물이다. 씨앗은 싹이 튼 뒤 7년 이상이 지나야 꽃이 핀다. 그래서 얼레지 군락지는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숲은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 세월이 길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얼레지의 번식을 돕는 제일 공신이 개미라는 사실이다. 얼레지 씨앗은 개미 유충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 눈이 나쁜 개미는 얼레지 씨앗을 개미 유충인 줄 알고 열심히 땅속 개미집으로 가져다 놓는데 그 덕에 얼레지 씨앗은 안전한 땅속에서 싹을 틔울 수 있게 된다.
한편 얼레지 비늘줄기는 전체의 절반 정도가 전분일 정도로 전분 함량이 많아 예전에는 이 전분으로 수제비나 떡을 빚어 먹었다고 한다.
최영선(자연환경조사연구소 이사)
[풀·꽃·나무 친해지기] (17) 야생화의 여왕 얼레지
입력 2015-04-2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