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아베 총리, 꿈과 욕망은 다른 겁니다

입력 2015-04-27 02:04

아베 신조 총리 주연의 쇼가 시작됐다. 26일부터 1주일간 미국에서 열리는 아베극장이 그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번 무대에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미국이 원했던 선물보따리가 아베극장에서 풀리는 모양새다.

아베극장의 클라이맥스는 29일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이 될 것이다. 그간 미국 의회는 일본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는 이유를 들어 거듭된 연설 요청에도 불구하고 줄곧 거절해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허용했다. 아베 총리는 가져온 선물보따리 이상의 답례를 받는 셈이다.

아베는 무척 감개무량해 할 것 같다. 그는 2006년 첫 번째로 총리에 오르기 직전 발간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전후체제로부터 탈피’를 무척 강조했었다. 그가 말하는 전후체제란 평화헌법 등 전범국 일본에 지워진 모든 것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분명 문제가 있으나 의회연설 허용은 매우 상징적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더구나 올해가 전후 70년인 데다 자신의 정치역정을 돌아볼 때 아베의 심경은 격정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2007년 거의 도망치다시피 해서 1년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절치부심 끝에 2012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가 된 뒤, 지금 화려하게 펼쳐지는 아베극장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건대 그에 대한 안팎의 평판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미국의 일본정치연구자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2006년 한 인터뷰에서 “아베는 몸과 마음과 머리가 모두 약하다”고 일찌감치 혹평한 바 있다. 마음과 머리 능력 등은 단언하기 어려우나 건강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는 듯하다. 2007년 총리에서 물러날 때 직접적인 원인은 궤양성대장염에 따른 장출혈이었고, 지금도 치료약을 상복한다고 알려지고 있는 만큼 건강에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아직엇갈린다. 그럼에도 아베노믹스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재료들은 하나둘씩 쌓이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엔 2년9개월 만에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주가지수도 상승일로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아베의 자신만만함은 여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꿈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일까.

그러나 꿈과 욕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아베 총리의 꿈이 전후 청산이 됐든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가 됐든 정치가가 비전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평가할 일이다. 문제는 그 꿈이 주위 사람들과 나눠가질 수 있으며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한 사람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입어야 한다면 그 꿈은 한갓 당사자의 욕망에 불과하다.

한 나라의 꿈도 다르지 않다. 아베 총리가 악전고투 속에서 자신의 꿈과 일본의 비전을 이루려고 애써온 것은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그로 인해 이웃나라와 국민들에게 아픔을 다시 떠안긴다면 그것은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만의 일그러진 욕망에 불과하다.

아직 아베의 의회연설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과거인식에서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베의 욕망 표출일 뿐이라고 본다. 오는 8월 15일 전후 70주년을 맞아 내놓겠다는 ‘아베 담화’에 대한 평가기준도 다르지 않다. ‘일본을 되찾자’는 과거회귀형 구호를 앞세워 재집권한 아베는 오만한 욕망을 선한 꿈이라고 계속 우길 것인가.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외교부는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베극장의 관객으로서 만족하는 건 물론 아닐 텐데.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