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서양 연극의 기원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을 꼽는다. 그런데 이 비극들은 대사로 이뤄진 연극이 아니라 노래가 중심이 된 음악극이었다. 중세 시대에 쇠퇴했던 음악극은 르네상스 후반 그리스 비극을 닮으려는 움직임에서 오페라가 만들어진 이후 대사 중심 언어극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이후 또 다른 음악극 장르인 뮤지컬을 낳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음악극이 인기가 끄는 것은 노래 또는 선율이 이야기를 훨씬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실례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자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오페라 ‘리골레토’로 만드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아했다. 하지만 공연을 본 뒤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4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5월 서울과 경기도 의정부에서 주목할만한 음악극축제가 잇따라 개최된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월 8일∼6월 7일)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제14회 의정부음악극축제(5월 8∼17일)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경우 그동안 프로그램에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많아 오페라 마니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프라노 홍혜경의 국내 무대 복귀 작품인 무악오페라단의 ‘피가로의 결혼’(5월 8∼10일)을 제외한 공식 참가작 4편이 아주 오랜만에 공연된다.
솔오페라단의 ‘일 트리티코’(5월 15∼17일)는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 세 단편으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이다. 그간 ‘잔니 스키키’만 단독으로 공연됐다.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 쟈코모 안드리코가 무대를 맡은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의 프로덕션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 ‘모세’(5월 22∼24일), 누오바오페라단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5월 29∼31일)도 각각 2009년과 2010년 단 한차례만 공연된 바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공연하는 ‘주몽’(6월 6∼7일)도 2002년 선보였던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을 새로 각색했다.
이외에 5월 23일과 30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가족을 위한 오페라 해설공연과 광복 70년 기념 창작오페라 갈라 무대가 무료로 열린다.
오페라에 초점을 맞춘 대한민국오페라축제와 달리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스펙트럼이 보다 넓은 게 특징이다. 출범 이후 서울 팬들까지 의정부로 불러 모을 정도로 주목을 모았지만, 지난 몇 년간 축제의 방향성이나 레퍼토리에서 참신함을 잃으면서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대표적 공연예술제 관광자원화 지원사업’ 대상으로 뽑혀 지원금이 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비록 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에 관광 전문가를 위촉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꽤 볼만하다. 6개국 15개 단체가 공식 초청작으로 참여한 축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독일 극단 니코 앤 더 네비게이터스와 베를린 도이체 오퍼 극장이 공동 제작한 ‘말러 매니아’(5월 8∼9일)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음악을 성악가, 무용수, 16인조 오케스트라의 앙상블로 그려냈다.
무대와 멀티미디어의 결합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칠레 극단 떼아뜨로 시네마의 ‘사랑의 역사’(5월 12∼13일)는 프랑스 소설가 레지 조프레의 동명소설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비뚤어진 사랑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청소년 관람불가다.
또 바흐의 피아노곡과 함께 섬세한 움직임이 펼쳐지는 캐나다 다이나모 씨어터의 ‘I on the sky’(5월 9∼10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두 남자의 기다림을 익살스럽게 담아낸 프랑스 도자두 씨어터의 ‘디디와 고고의 기다림’(5월 16∼17일), 재즈피아니스트 곽윤찬과 배우 조판수의 조화가 돋보이는 한국 ‘노베첸토’(5월 14일), 지난해 초연돼 호평을 받았던 창작뮤지컬 ‘파리넬리’(5월 16∼17일) 등도 기대를 모은다. 야간 뮤지컬영화 상영, 뮤지컬 배우와 같이 하는 콘서트 등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야외거리공연도 많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대사보다 드라마틱한 선율… 축제의 계절 5월, 음악극의 유혹에 빠져보자
입력 2015-04-27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