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도 미술품 투자 많았다

입력 2015-04-27 02:13
조선 최고의 고미술상 배성관 인터뷰 기사. 매일신문 1936년 6월 11일자로, 서울 남대문에서 배성관형제상점을 운영했던 그는 일부러 상투를 틀어 골동품을 사려는 외국인 고객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돌베개 제공
일제 치하 강원도지사, 함경북도지사 등을 지내며 식민지 조선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박영철. 그는 친일파로 유명하지만 또한 미술품 애호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했다. 사후 막대한 수장품은 경성제국대학에 기증됐고 해방 후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기초가 됐다.

일제 강점기 문화재 수집은 간송 전형필이 상징하듯 애국적 행위로만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수장가의 유형은 다양했다. 친일파도 있었지만 치과의사 함석태, 정치인 장택상, 취리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한상억 등 전문직 종사자와 학자도 적지 않았다. 1930년대 ‘금광 열기’ 등 투기 붐이 불면서 평생 모은 수장품을 일거해 처분해 투자차익을 올린 외과의사 박창훈 같은 이도 존재했다.

미술사학자 김상엽(52)씨가 쓴 ‘미술품 컬렉터들’(돌베개)은 근대에 펼쳐진 수집의 문화사를 시대사적 맥락 속에서 보여준다. 미술에 관한 책들은 주로 작가와 작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향유 되지 않는 예술작품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미술품 거래 주체들에 눈길을 준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책은 익히 알려진 오세창, 전형필뿐만 아니라 대중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미술품을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본 박창훈’ ‘마지막 내시 수장가 이병직’ ‘최초의 치과의사 수장가 함석태’ 등 다양한 수장가들의 삶과 수장문화를 소개한다.

수집가와 함께 거래에 나섰던 다양한 중개 주체들도 주요한 축이다.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 등 일제 정치권력의 정점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고려청자 수집열은 일본인 골동품상들의 조선 진출을 자극했다. 경매를 통해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려청자는 품귀현상을 빚었고, 전국은 도굴꾼으로 몸살을 앓았다.

일제 강점기는 말하자면 근대미술시장이 형성된 시기였던 것이다. 미술품 감식부터 전시기획, 매매상, 거간꾼 등 이전에 없었던 직종과 산업이 생겨났다.

일본인이 장악했던 미술시장에서 오봉빈의 활약은 돋보인다. 본격적인 화랑인 ‘조선미술관’을 운영했던 그는 최초의 전시기획자였다. 1938년 ‘조선명보전람회’에는 손재형, 이병직, 박창훈, 박영철 등 내로라하는 수장가외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이왕가박물관 등 기관들까지 출품했다. 정선, 이인문, 김명국을 비롯한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나왔는데, 도록에 실린 것만 130여점이 된다. 문인 이태준은 “오봉빈씨의 힘이 아니고는 이만치도 진열이나 수록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극찬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