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의사 김만철씨가 1987년 1월 15일 새벽 일가족 10명과 함께 50t급 어로감시선을 타고 청진항을 탈출한 이유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뱃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발 다음날 배 엔진이 고장 나 표류하다 탈출 25일 만에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남한이 그가 말한 따뜻한 남쪽나라는 아니었지만 김씨 일가족은 비로소 자유를 만끽했다.
김씨 가족처럼 인간다운 삶을 찾아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무작정 정든 고향을 등지는 보트피플을 당시엔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근해가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거룻배 등에 겨우 몸만 싣고 고국을 탈출한 남베트남인이 줄잡아 90여만명에 이른다. 세상은 이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불렀다.
당시 여러 나라가 이들을 외면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주 2부가 방송되는 KBS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의 실제 주인공 원양어선 광명87호 선장 전제용씨는 1985년 베트남 보트피플 96명을 구조했다가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고,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 ‘무시하라’는 정부와 회사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인(義人)으로 표창은 못할망정 이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보트피플의 비극이 지금 지중해에서 재연되고 있다. 유럽으로 가기 위해 아프리카 보트피플이 지중해로 몰리면서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난민선 침몰로 이달 초 400여명이 숨진 데 이어 지난 18일에도 8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 들어서만 1600여명이 희생됐다. 벌써 지난해 사망자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데도 현재 리비아에만 50만∼100만명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이들의 열망을 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밀입국한 보트피플이 1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 정상들은 23일 긴급 모임을 갖고 보트피플을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목숨을 걸고 희망을 찾아왔는데 쫓아내는 행위는 사지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이 점점 잔인해진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보트피플의 슬픈 운명
입력 2015-04-25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