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제기, 의견표명 넘어 허위사실 공표”

입력 2015-04-24 03:08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조희연(49) 서울시교육감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면서 세 가지 측면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여부가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였던 점, 선거일에 임박해 의혹제기를 한 점, 기자회견 등을 통해 유포해 전파성이 높았던 점을 감안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의 의혹 제기가 ‘의견표명’의 수준을 넘은 ‘사실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의혹을 해명하라는 내용의 발언이었지만 사실상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적시했다는 것이다. 고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이 있다는 의혹은 앞서 미국대사관을 통해 허위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의혹을 제기할 당시 충분한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은 지난 20일부터 나흘 동안 매일 열렸다. 23일 오전 10시 열린 마지막 재판은 12시간 후에야 끝났다. 조 교육감은 최후진술에서 “나흘 동안 진행된 이번 재판이 서울교육 4년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전원일치 유죄 평결을 내렸다. 시민들의 판단을 받겠다는 취지로 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조 교육감은 선고 직후 “항소해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비록 1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서울교육의 혁신 정책은 굳건히 실행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1심에서 선고된 형이 확정되면 조 교육감은 공정택(2009년) 곽노현(2012년) 전 교육감에 이어 중도 퇴진하는 세 번째 서울시교육감이 된다. 공 전 교육감은 부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재산신고 때 누락한 혐의, 곽 전 교육감은 후보 매수 혐의가 대법원에서 인정돼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조 교육감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조 교육감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교육감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공석 사태는 빚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운신의 폭이 좁아져 ‘조희연표 개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생인권 증진, 혁신교육 확산 등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핵심 과제들이 동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자율형사립고, 특목고, 특성화중의 일반고 전환 문제나 누리과정 예산처럼 민감한 현안을 처리하는 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공 전 교육감이나 곽 전 교육감 낙마 당시처럼 서울 교육정책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감 선거 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조 교육감 체제가 적지 않게 흔들리게 됐다”며 “아무래도 (조 교육감이) 재판에 대응하는데 좀더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