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한국경제] 성장률 4분기째 0%대… 원·엔 환율까지 ‘발목’
입력 2015-04-24 03:57 수정 2015-04-24 19:06
경제성장률이 4분기 연속 0%대에 그쳤고 원·엔 환율은 900원대를 하향 돌파하며 우리나라 경제에 근심거리를 하나 추가했다.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수출 중소기업들은 바닥을 모르는 엔저 탓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치권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시급한 경기 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를 잊은 채 정쟁에만 몰두해 있다. 살아날 줄 모르는 경기 탓에 기업들은 성장 대신 안정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3일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보다 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연속 0%대 성장이다. 이처럼 1분기 성장률이 부진한 양상을 보이자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 등의 호재가 있었지만 위축된 투자·소비 심리를 회복시키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소비, 투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2분기에도 회복세는 미약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투자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2014년 기업경영 분석(속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4.32%로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기업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증가율도 사상 최저인 마이너스 1.49%로 떨어졌다. 기업의 매출액 감소는 수출가격 하락의 영향이 가장 컸다.
매출액뿐만 아니라 기업의 영업이익률마저 줄었다. 조사 대상 기업의 주요 수익성 지표를 보면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3년 4.7%에서 2014년 4.3%로 하락했다. 물건을 1000원어치 팔았을 때 세금과 비용을 제하고 남는 영업이익이 43원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원·엔 재정환율이 개장 전 899.67원을 기록하며 900선 밑으로 떨어져 향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서울외환시장 개장 직후 903.70원으로 900선을 회복한 뒤 903.04원으로 마감했다. 원·엔 재정환율이 900원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8년 2월28일 이후 처음이다.
엔저가 가속화되면 일본 업체와 경합하는 한국 수출 기업은 가격경쟁력 약화로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겹치는 품목이 50개가 넘고, 이들 품목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 이상이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기반으로 수출 단가를 본격적으로 내리면 한국 수출 기업의 채산성은 나빠지는 구조다.
정부는 기업들이 엔저를 활용해 앞당겨 설비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저금리로 외화대출을 해주고, 감가상각을 빨리하는 가속상각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한적인 수단을 앞세워 엔화 약세에 대응하고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