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들이 늘면서 최근 대형 인명사고가 잇따르자 유럽연합(EU) 정상들이 23일(현지시간)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회원국들이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보다 각자의 정치적 이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난민 문제 해결책을 논의 중인 EU가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 중 일부에게만 거처를 제공하고 대다수는 신속히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온 난민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EU 긴급 정상회의 성명 초안에 따르면 정상들은 난민들에게 5000개의 거처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새 방침을 정했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건너온 난민이 지난해 21만여명, 올해 4월까지만 해도 3만명이 넘은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규모다.
가디언은 “정상회의 결과는 EU 국경관리기관 프론텍스의 해상순찰 임무 ‘트리톤’에 대한 자금 지원을 두 배로 늘린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하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는 데도 난민 수색과 구조가 확대되거나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0일 EU 외무·내무장관 회의에서 마련된 난민 대책을 위한 10개 행동계획에는 밀입국 조직 소탕 등과 함께 트리톤에 자금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들어있다. 그러나 프론텍스는 자신들의 역할이 해상 순찰이지 난민 수색 구조가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에도 프론텍스 수장 파브리스 레저리는 “수색 구조를 순찰보다 우선순위에 둘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밀입국 조직 소탕을 위한 군사 작전은 효과도 없을 뿐더러 인도주의적 문제를 군사 문제화하는 대응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리비아 해안을 봉쇄하는 것은 전쟁선포나 다름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그간 예산 부담 때문에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EU가 지난해 예산을 이유로 이탈리아 해군이 수행했던 대규모 수색 구조 작전인 ‘마레 노스트룸’을 폐기한 것이 난민 급증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1차적으로 도착하는 남유럽 국가들은 북유럽 국가들에 공동 부담을 호소했지만 북유럽 국가들이 외면하는 상황도 계속돼 왔다.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난민 수색 구조 확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권자들이 지중해 참사를 이민자 문제가 아닌 인권 위기로 인식하자 급한 대로 민심을 얻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민제한 정책을 내세우는 각국 극우정당을 중심으로 수색 구조 지원이 난민들의 유럽행 밀항을 부추기는 ‘흡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여전히 크다.
자국으로 난민이 몰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탈리아는 EU의 실효성 있는 난민 대책을 압박하고 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가 난민 밀입국 알선업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EU가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이날 그리스 북서부 이구메니차에서 이탈리아 남동부로 가는 선박에 실릴 예정이었던 버스 밑바닥에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숨어 있다가 차축에 눌려 사망했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U, 생존 난민 다시 아프리카로… 유럽의 ‘지중해 난민’ 폭탄 돌리기
입력 2015-04-24 02:35